천국과 지옥 간증
천국넷 1000gook.net

박소리 목사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기도하는 시간마다 울지 않고는 주님의 그 사랑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아니, 눈물로도 글로도 어쩌지 못하여 가슴만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감격의 눈물을 꾸역꾸역 쏟아내기가 일쑤입니다.그처럼 죄인 중의 괴수인 저를 주님께서는 순전히 주님 마음대로 택하셨습니다.그리고 구원하셨고 천국자녀 삼아주셨습니다.

뿐 아닙니다. 원한 적 없었건만 천국을 데려가셨고 지옥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2006년 12월 7일에 시작하여 2007년 2월 21일, 77일간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특권인가 기쁘기 한량없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랑스런 맘도 들었던 적이 있었음을 이제야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삼년 째 접어들면서 겪어온 바, 그것은 대가를 치뤄야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보았으므로 알려야 했고, 보았으므로 그처럼 살아가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을 뿐더러 거룩하신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도 뵈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주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지금은 어찌되든 그저 감사만 남아있습니다. 저의 사고체계와 가치체계를 바꾸신 주 하나님 아버지,내 운명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주 예수님!

그 분께서 이 기록을 읽는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실 것을 믿고 기도드립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신랑되신 사랑의 예수님,늘 지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성삼위일체 되신 주님께이 글을 올려드립니다. 기록하라 하심에 순종하였고여기 순종의 열매를 올리나이다.   받으시고 합당하신대로 쓰시옵소서.     아멘.

 박소리 올림.

과거 이야기

아름다운 현재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그 댓가를 치룬 과거가 있음을 세기의 반을 살게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됩니다.저 역시도 주님께서 아름다운 천국을 보여주시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아름다운 일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뼈시린 아픈 과거를 겪어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지난 과거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번 책을 내면서 더 이상 쓰지 말 것을 명하셨으므로 순종하려 합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고 말고는 이제 저에겐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드러내는 것이요, 원치 않으시면 하지 않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저로 하여금 저의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식석상에서 드러내도록 명하셨던 적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그 때 마다 저는 속으로 아프지만 순종했었습니다.이제 그 순종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이러든 저러든 주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아픈 과거가 있기에 누군가와의 상담 때에도 저 역시 겪어본 일인지라 같은 아픔으로 울며 기도할 수 있어서 이제는 기쁩니다.이제 저에게 아픈 과거는 없고 오직 기쁘고 즐거운 오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아픈 과거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요.다만 지금 아파하시는 분들께, 그 아픔을 지나 반드시 주님께서 준비해두신 아름다운 미래가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린도후서 1:6

주님과 나눈 대화 가운데 가끔은 저의 과거를 알지 못하여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으실 줄 압니다. 그러기에 가급적이면 저와의 개인적인 대화부분은 줄이도록 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한 인간의 과거를 드러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주님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임을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박소리는 십자가 뒤로 힘껏 제껴두시고 오직 주님께만 촛점을 맞추어 읽으시면 훨씬 유익된 내용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책을 읽는 형제 자매의 마음눈을 밝혀주셔서 글 속의 글들을 읽어내도록 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록자 배경

전혀 안 쓰고는 안 되겠어서 조금 써 봅니다.

58년생이구요, 현재 미국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거주하고 있습니다.

예장합동총회 경기노회 목사안수, 주마교회 담임목사,하늘빛선교회 대표

All Nations Missile Prayer(AMP) 주님지시대로 쏘는 미사일 중보기도 사역리더입니다..

보시다시피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사람입니다.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Contents

책 머리에

과거이야기

기록자 배경

 

  1. 첫 번째 데려가심/ 다윗
  2. 두 번째 데려가심/ 아브라함ㆍ베드로ㆍ바울
  3. 세 번째 데려가심/ 엄마ㆍ처음 본 지옥
  4. 주님의 방문과 대화
  5. 네 번째 데려가심/ 박물관ㆍ가룟 유다ㆍ외할머니
  6. 다섯 번째 데려가심/ 선악과ㆍ이단 경고
  7. 여섯 번째 데려가심/ 비판하는 자들
  8. 일곱 번째 데려가심/ 나눔의 축복Ⅰ
  9. 여덟 번째 데려가심/ 나눔의 축복Ⅱ
  10. 아홉 번째 데려가심/ 믿음으로 가는 나라
  11. 열 번째 데려가심/ 십자가의 공로Ⅰ
  12. 십자가의 공로 Ⅱ/ 천국에서 만난 그들
  13. 열 한 번째 데려가심/ 도서관ㆍ사도 바울
    1. 열 두 번째 데려가심/ 천주교의 오류 Ⅰ
    2. 천주교의 오류 Ⅱ열 세 번째 데려가심/ 사도 요한
    3. 열 네 번째 데려가심/ 엘리야와 엘리사
    4. 열 다섯 번째 데려가심/ 무디ㆍ책에 관한 환상
    5. 열 여섯 번째 데려가심/ 두려움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
    6. 열 일곱 번째 데려가심/ 죠지 뮬러와 주님 마음에 합한 기도
    7. 열 여덟 번째 데려가심/ 환난 중의 순교자
    8. 열 아홉 번째 데려가심/ 닥터 누가ㆍ삭개오
    9.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Ⅰ/ 천국편
    10.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Ⅱ/ 지옥편
      1. 스무 번째 데려가심 Ⅲ/ 종결편
      2.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첫 번째 데려가심/ 2006년 12월 7일


다윗


새벽기도시간이었다.

이 날이라고 뭔가 특별한 어떤 일이 예고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몇 차례의 주님의 주밀하게 이끌어오신 훈련으로 인해 주님께서 이끄시는 어떤 일이든 당황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있는 상태였다고 할까.

 

성령님께 입술을 맡기고 기도하는 중이었다.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하심을 온 몸과 영혼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더니 온 몸에 기운이 빠지는 듯 했다.의자 뒤로 길게 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몸을 뉘우자 기다렸다는 듯 몸이 경직되어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눈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다.처음에는 그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어떤 보좌가 하나님의 보좌인 것 같다는 지식이 절로 생기는 것이었다.

 

넓은 성전이었는데 저만치 멀리에 한 분이 서 계셨고 그 분의 왼편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다.

서 계신 분은 예수님이셨고 보좌에는 아무도 없지만 그 자리에 하나님이 좌정하여 계심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구부러진 머리결에 갸름한 듯 보이는 얼굴은 평소 성화에서 본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성화보다 얼굴도 몸매도 좀 더 갸름하게 느껴졌다. 얼굴윤곽만 알 수 있고 그 속은 볼 수가 없이 내 눈에는 희미하게 보였다.

키가 훤칠해 보이셔서 몸이 더 가늘어 보였다.그 때에야 그 분이 예수님이심을 확연하게 마음에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아, 스데반 집사가 본 장면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사도행전 7:55-56

 

그 때였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던 예수님께서 스르르 내게로 다가오시더니 어느새 나의 오른편에 서 계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셨다.나는 어리버리한 어린아이가 되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신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어딘가를 걸으셨다.양옆에는 꽃들이 즐비했고 길은 부드러운 황금빛 길이었다.나는 그제야 내가 지금 천국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내 안에서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이 때를 놓치지 말고 보고싶은 것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예수님, 제 집 있어요? 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그런데 왠일인지 예수님께서 머뭇거리시면서 안 보여주시려는 듯이 느껴졌다.천국은 저절로 상대의 마음이 말하지않아도 읽어지는 것이었다.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 가운데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천국에 이르는 모든 백성은 모든 것을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 여쭈고는 답을 못들은 나는 머쓱해져서 잠시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이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졸라댔다.

“내 집 좀 보여주세요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졸라대고 있는 나였다.결국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보여주시기로 하신 듯 나를 이끄셨다.

곧 저 만치 길 끝에 납작해 보이는 집 한 채가 보였다. 작고 아담하면서 지붕이 편평한 단층집이었다.

전체적으로 빛이 나지 않는 우중충한 황금색깔 집이었다.

입구에 자그마한 현관문이 보였고 옆으로 제법 큰 창문이 하나 달랑 달린 것이 전부인 집이었다.

 

어느새 내가 집안에 들어서 있었다.내 눈앞에 역시나 초라한 풍경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원룸 스튜디오식의 달랑 방 한 칸에 가구가 뜨문뜨문 놓여 있었다.오른 쪽으로는 커다란 책상 두 개, 의자도 없는.

그리고 책상 옆에 세워진 전기 스탠드 하나.왼쪽 구석에는 소파가 있었다.

아랫 부분을 잡아당기면 침대가 되는 겸용소파였다.

다시 말해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볼품없는 3인용 소파가 있었고 기역자로 2인용 소파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작은 티테이블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게다가 커다란 창틀에는 커텐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아 휑뎅그레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 집을 보여달라고 졸라대던 나는 그만 내 집의 이러한 모습 앞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수도 숨을 곳도 없어 그저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계신 예수님의 속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져 왔다.

‘그래서 내가 안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주눅든 나를 예수님께서 달래시기 시작하셨다.

“이제부터 열심히 상급쌓으면 되잖아. 너 잘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께.”

그러시더니 손을 드셔서 예수님의 세마포 왼쪽 심장 쪽에서 예수님의 심장을 꺼내셨다.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빨간 하트 모양의 심장이었다!

 

예수님의 심장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신 것이다.내가 새빨갛다고 표현했지만 천국의 색은 이 땅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이다.다만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에 빨간 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예수님께서 그 아름다운 빨간 심장을 들어 저의 심장에 넣어주셨다.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흐느끼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테너음성으로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자 저 끝에 황금마차 한 대가 보였다.두 대의 말이 끄는 마차였다.

 

그 마차에는 마치 영화 「벤허」처럼  멋지게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복장도 영화에서 보던 주인공 같은 복장이었다. 주름치마같은 것을 입고 신발은 종아리까지 끈을 매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단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것만 달랐다.키가 작고 귀여운 얼굴의 그가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왼손은 높이 치켜들고 찬양하고 있었다.

내가 속으로 의아해 하며 ‘누구지?’하고 의문을 품자말자 예수님께서 답해주셨다.

“다윗이다.”아, 다윗!성경 속의 다윗을 내가 직접 보다니!

기뻐할 겨를도 없이 내 영은 즉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면서 곧 경직되었던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곧바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어서 잠시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여전히 몸에 기운이 없고 맥이 없는 듯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믿기지 않는 사실에 대해 나 스스로 감당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조금씩 몸을 추스려서 간신히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다.운전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자꾸만 흐느끼고 있는 나였다.차고에 주차를 하고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운전대를 부여잡고 한동안 꺽꺽대며 울었다.

그것은 주님의 눈물이었다.

주님의 빨간 피로 흘리시는 심장의 사랑의 눈물이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눈물로 다른 영혼을 위하여 눈물흘리라고 주님께서 내게 그 심장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상급을 빨리 쌓는 지름길이므로 그것을 주신 것이다.

볼품없는 나의 하늘집을 가장 빨리 아름답게 가꾸게 해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심장!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장으로부터 흘리신 눈물이 오늘 나를 구원의 자리에 두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를 나의 눈물로 구했으니 이제 너도 나의 눈물로 나의 백성을 구하라고...!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1일

 

아브라함ㆍ베드로ㆍ바울

 

주일 저녁이었다.침대에서 성경을 읽다가 잠을 청했다.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꾸만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느꼈다.그렇다고 무슨 공포감이 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깨어서 시간을 보니 밤 11시.그 때부터 갑자기 나를 향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시작되었다.

몸에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번개같은 전기충격이 온 몸을 강타했고 내 몸은 펄쩍 뛰듯이 튕겨졌다.

불같은 뜨거움이 온 몸을 휘감았다.그러면서 주님의 음성이 가슴 저 밑에서 들려왔다.

"네가 있는 곳곳이 예배처소가 되리라.네가 가는 곳마다 기도할 것이며 그곳에 내가 강하게 임재하리라.
내가 큰 능력으로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나서 몸에 더 큰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그러더니 내가 아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예언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때로는 누군가에 대한 환상이 보이기도 했다.

예언이 끝나길래 시계를 보니 11시 30분.30분간을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저절로 스르르 또 눈이 감겨왔다.몸에 진동이 다시금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어공주처럼 몸흐느적거리기도 했다. 몸을 모로 뉘어보았다.그래도 그 흐느적거림은 여전했다.

그저 몸을 맡기고 있기는 했지만 내 맘은 속으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했다.이러다가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도 했다.몸이 어찌나 뜨거워 오든지 전기매트를 껐다.

주님이 내 손을 이끌어 옷 매무새를 단정케 하도록 이끄시더니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가슴 아래 올려 놓도록 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마치 장례식 때 관 속에 누운 사람의 모습과 같은 형태였다.

그러더니 어느새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어 가신 것을 알 수 있었다.몸은 죽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두시고 내 영만 데려가신 것이다.

누가 믿을까, 한 번도 가기 힘든 그곳을 두 번씩이나 가게 되다니.아무튼 주님께서 데려가셨으므로 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데려가시기 직전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I will show you Kingdom of Heaven..”내가 너에게 천국을 보여주겠다--

왜 영어로 말씀하셨을까?내가 미국에 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이유?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주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적절하신 때에 알려주실만한 것은 알려주심도 잘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형상으로 보이시지 않고 빛의 형상으로 나와 함께 계셨다.

그런 지식은 천국에 이르게 되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예수님께서 생명강과 생명나무를 보여주셨다.그것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에 기쁨이 넘쳐왔다.

내가 주님께 말씀드렸다.“예수님, 더 많은 것을 칼라풀하게 보여주세요.왜 저는 흑백으로 보이는 거죠?”

실은 흑백이라기 보다는 내 눈에 침침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너의 죄된 심성으로 그러한 것이란다.그리고 아직 다른 것은 너에게 보여주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단다.

너에겐 특별히 조금만 보여주는 거란다, 너의 믿음을 더해주기 위해서.” “지금 회개하고 씻을께요.”

나의 즉각적인 응답에 예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차차..” 하셨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점점 더 깨끗해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 저의 집을 다시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비록 초라한 집이었지만 천국에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던 나는 재차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내게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었다.

다시 가보니 빛이 전혀 나지 않던 그 집에 황금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그것을 보자니 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너의 마음에 빛된 내가 밝게 빛나서이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셨다.

실내로 들어가 보았다.실내도 전보다 훨씬 밝고 화려해져 있었다.소파도 좋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티테이블 가운데에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다른 먹거리들도 바구니에 이쁘게 담겨 놓여 있었다.

창틀에 커텐도 레이스로 달려 있었고 책상에 의자도 생겼다.

방의 크기도 넓어져 있었다.안쪽으로는 침대가 새로 생겨서는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예수님!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집이 화려해질 수 있죠? 제가 무슨 상급을 쌓았나요?”

“네가 다른 영혼들을 위해 흘린 눈물이 꽃들로 장식된 것이란다.네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내가 그것을 담아온 것이다.천국은 시간으로 상급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쌓이는 것이다.”

그 다음 본 것은 어떤 과수원 같은 곳이었다.나무가 즐비하게 많이 있었는데 나무마다 조그만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사람들이 맺는 성령의 열매가 나무에 열매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이름이 은혜나무란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의 열매 희락과 화평의 열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들은 모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은혜나무인 것이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누가 보고싶냐고 물으셨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보고싶다고 생각하자마자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황금휠체어같은 것을 타고 나타났는데 이후 알게 된 것은 그것이 황금보좌라는 것이었다.

일반 의자와는 달리 그것은 아래에 바퀴가 달린 듯 움직였지만 그 바퀴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의자가 굴러오는 것이 아니라 스르릉..하고 미끄러지듯 스르륵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나를 보자 의자에 앉은 상태로 나를 안아주었다.아브라함은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이었고 하얀 세마포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그리고 몸매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적당히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그를 보자 내 안에 절로 소원이 생겼다. ‘저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세요...’

말로는 꺼낸 바 없지만 이미 천국백성이 된지 오래인 그는 나의 마음의 기도를 알아 차렸다.

그는 “못 줄 것 없지” 그러면서 그의 심장을 꺼내어 내 심장에 넣어주었다. 그것은 저번 날 예수님이 하신 모습과 거의 비슷한 행동이었다.그의 심장은 황금돌같이 둥글게 생긴 것이었다. 약간 회색 빛 같기도 한, 용암같은 황금이라고 표현하면 될 듯. 그 심장을 받는 순간, 내 안에서 찬양이 떠올랐다.

 

♬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돌같은 내 마음 곧 녹여주소서~

아브라함은 내게 심장을 주러 나타난 사람처럼 심장을 주고는 곧 다시금 스르릉..하고 오던 모습과 같이 사라져 갔다.그는 참 편하고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온화해 보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깨달음은 이것이다.아브라함이 뭔가 특출나게 뛰어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처럼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만 입으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 다음 보고싶은 사람으로 베드로가 떠올랐다.내 마음을 이미 읽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다.

“베드로야~.”

저 쪽에서 덤벙거리며 베드로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덜렁대는 모양새가 나랑 비슷해서였을까?

그 털북숭이 아저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즐거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처음보는데도 아주 오래도록 보아온 사람처럼 친근함과 사랑스러움이 내 안에서 그를 향해 마냥 넘쳐났다.

베드로가 내게 악수를 청했고 우리는 서로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덩치가 좀 있고 북실하고 살집도 좀 있는 베드로 아저씨였다.그를 보고 있자니 궁금증이 피어났다.‘저 아저씨는 왜 면류관이 없지?’

내 속을 알아차린 베드로가 말했다.“난 면류관 귀찮아서 안 쓰고 다녀. 그냥 집에 모셔두고 있어.”

그가 그 말을 하는데 내게 그의 집안이 보였다.구석에 있는 네모난 엔드테이블 위에 올려진 면류관이 보였다.

천국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그 기질과 성품대로 자유롭게 행하는 곳임을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은 즐겁게 왕관을 쓰고 다니고, 어부였던 베드로는 편한대로 벗어두고 다니는 편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천국.

“아저씨는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어요?”

늘 궁금해하던 질문을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내가 스스럼없이 묻고 있었다.그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꾼 베드로 아저씨였다.

"첨에 예수님께서 부르셔서 힘차게 물을 디뎠지. 걸어가는데 기분이 참 좋았어.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다가 갑자기 물을 내려다 본 거야. 시퍼런 물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무서운 큰 눈초리를 보았어. 그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는거야. 그러면서 물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지.

그때 예수님을 소리질러 불렀더니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날 잡아주셨어."

그 말을 한 후 두 팔로 나를 안으면서 말했다. “베드로후서를 잘 읽어라.마지막 때의 비밀이 거기 있노라.”

이야기 할 때랑은 다르게 이 말을 할 때에는 엄숙하고 무게있는 어투였다.그러더니 다시 명랑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또 가봐야겠다. 난 아이들을 지금 돌보고 있어.난 아이들이랑 노는게 좋아.”정말 천진한 베드로였다.

그 다음에는 사도 바울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키가 크지 않고 못 생긴 아저씨가 나타났다.

그는 몸집도 베드로보다 훨씬 왜소해 보였다.왼쪽 눈이 진짜로 툭 불거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세상에서 받은 고난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눈에도 고문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천국에서는 우리의 모습이 온전해진다고 들었는데..??

나는 이후 주님께 이 부분에 대해 질문드렸다.그 때 주님은 이런 답변을 주셨다.

“나의 종아, 그리하여야 너의 지식 속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것이 아니냐? 나는 네가 아는 지식을 넘어 너에게 나타내 보이는 무례한 자가 아니니라."

주님은 우리가 아는 지식만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와 더 많은 교제를 나누고 싶으셔서, 더 많이 보이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성장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베드로후서 3:18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안질을 앓았지만 천국에서는 괜찮다.”

그를 보는 순간 존경심이 우러나서 나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어 고개숙여 인사했다.그가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주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4:8

 

“어떻게 그렇게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내가 말에는 졸하나 지식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고린도후서 11:6

 

역시 사도 바울이었다. 주로 성경구절로만 말하는 것이었다..ㅎㅎ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 가득 담은 눈초리로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 그가 나를 위하여 많은 고생을 했느니라..”

 

주님을 위하여 많은 고생을 하는 이들이여, 기뻐하시라!

그것은 곧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넘치게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보고싶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다가 문득 엄마, 큰이모,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들이 떠오르자마자 내 눈 앞에 한 장면이 보였다.

그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둘러앉아 세상에 남은 가족들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달려가 참여하고 싶다든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아..엄마..하는 느낌만 있었고 모녀 관계보다는 같은 성도로서의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천국은 세상에서의 관계적 호칭은 살아있어서 ‘엄마, 언니’ 등 부르기는 하지만 다만 호칭만 그렇게 부를 뿐 육적인 관계를 넘어선 더욱 아름다운 예수피로 맺어진 성도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곳이다.

 

그리고 늘 궁금하던 맹의순 선생님.그 분이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맹의순 선생님은 정연희 작가가 쓴 신앙전기적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나는 이십여 년전, 그 책을 읽고 참 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짧은 26년을 사는 동안 얼마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다가 주님께로 가셨는지 모른다.그는 억울하게도(알고보면 주님의 이끄심으로)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끌려가 거기서 광야교회를 세우고 중공군 포로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의 핍박 속에서도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다.

중국말로 시편 23편을 써서 환자들에게 더듬거리면서 읽어 주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시편을 읽어주다가 하늘을 우러러 보며 “내 잔이 넘치나이다..넘치나이다..” 하고는 쓰러져 그대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의 시체도 거적에 실려 버려지는 바람에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중공군 포로들은 그의 죽음 앞에 통곡하며 선생님이 믿던 예수를 중국으로 돌아가 전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주님은 아름다운 그를 중국 선교의 피의 제물로 쓰신 것이다.

그것이 그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그의 사명이었고 그는 그 소임을 다하였으므로 주님 품에 안기게 된 것이다, 내 잔이 넘치는 가운데...

26세에 천국에 간 그가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당시 초신자였던 나는 책 끝장에 그에게 편지를 썼었다.

이후 천국가서 인사드리겠다.천국에 얼마나 바쁜 일이 많으면 그리 일찍 데려가시냐고..

나도 선생님처럼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고 싶다고..

 

그리고는 십수년이 넘도록 잊고 있던 그가 갑자기 이 천국에서 보고싶다니.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심이 분명하다.

“그가 바쁘다, 공사중이라.”

에수님께서 그가 건축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셨다.이후에 천국에 이를 성도들을 위한 집들을 짓고 있는 것이다.

 

새예루살렘은 이미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일러주신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 지금도 천국에는 곳곳에서 공사 중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 집이 분명 리모델링된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였잖은가!

성도들의 상급으로 계속지어지는 집 건축에 그가 섬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국은 공사중일지라도 세상처럼 지저분하지 않음도 지식으로 알 수 있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니신가!

 

그 다음 보여주신 것은 선교사들의 맨션이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집은 길다란 아파트같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건물을 보고있자니 뿌듯함이 몰려왔다.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힘쓴 자들을 위한 저 큰 집..!

 

주님은 선교를 기뻐하신다.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지에 뛰어든 그들의 순종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주님에게 큰 상급을 받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

하나님의 음성이 우렁우렁 들려왔다.지상에 있더 내 육체에 다시금 강한 진동이 몰려 왔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나의 택한 그릇이니라.내가 다시 말하노니 담대하라.
내가 너를 마지막 때의 선지자로 안수하노라.네가 쟈슈아 제너레이션, 세컨 제너레이션과 동역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표기했다.

쟈슈아 제너레이션은 영어로 Joshua Generation, 한국말로는 여호수아 세대이다.

세컨 제너레이션은 Second Generation, 즉 믿음의 제2세대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구별된 두 세대이다. 내가 그들과 동역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무슨 동역을 하게 되는가 싶었는데 주님은 그 부분에 관햬 이후 내가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그 부분에 관하여는 이후 따로이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빛되신 하나님께서 내 머리에 안수하며 말씀하셨고 주변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흰 옷 입은 하늘나라 백성들이 여기저기로부터 모여들면서 “아멘..아멘..”하고 있었다.

이 때 안수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아닌 성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는 천사들이 우리가 있는 곳 위를 둥글게 날며 찬양하기 시작했다.하늘을 나는 천사들은 키나 몸매나 사이즈가 좀 작아 보였다.

날개달린 천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주 여호와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시도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나서 빛되신 주님께서 내게 입맞추며 말씀하셨다.

“내 입의 말을 네게 주노라.”

그 순간 지상에서의 내 육체의 배가 불러오는 것이었다.

입맞춘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그렇게 표현하였지만 빛이 내 입에 닿은 것을 뜻한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대언의 영을 주노라.” “어떤 환난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담대함을 주노라.”

내게 올 고난을 미리 대비해 주시는 담대함이다.미리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는 하나님..

큰 숨을 내쉬며 나의 경직되었던 몸이 풀렸다.시간은 밤 12시 10분, 40분간의 천국여행이었다.

 

이 땅에서의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나는 40분 안에 많은 것을 본 것이다.

천국의 시간은 이 땅에서의 시간과 다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하신 지 이천 년이 지났다.어떤 이들은 그러므로 더디다고 말하고 지쳤다고 말하고 이제는 잊겠다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어디가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그렇다!

주님은 지금 시간을 늦추시며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천국에서 이천 년이라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이십 분일 수도 있고, 두 시간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제 아주 조금의 시간여유가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이전에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회개하여야 한다.영적인 소독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균실에 계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내가 할 일은 바로 소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메시지인 것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1:15

 

씻어야 한다. 청결해야 주님을 볼 수 있다.샤워 후의 개운함과 상쾌함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날마다 하도록 하자.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날마다 샤워를 하자.그러면 나의 영과 육이 날아갈 듯 하리라.

지상에 도달한 내 영은 육체를 만나 주님이 주시는 상쾌한 개운함 속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세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5일

 

엄마 · 처음 본 지옥

 

새벽기도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

통성기도 시간에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영혼도 입도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영적 분위기였다.

최근 들어 연이어 몇 번의 영적 체험이 있은 터라 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길게 늘어선 의자 위에 눕고자 했다.그런데 눕자마자 곧 집에 가서 누우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입에서 밀어내듯 방언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흐느낌으로 친히 간구하심을 알 수 있었다.그러면서 왠지 오늘 지옥을 보여주실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셨다.겁이 많은 나인지라 그 생각이 들자 좀 겁이 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중얼중얼 입에서는 방언으로 기도를 드리면서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정돈한 후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방언이 강해지면서 몸에 진동이 크게 오기 시작했다.팔도 막 휘저어졌다.

저번 날보다 더 크게 전기충격같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예수님께서 오셨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주님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고백으로 화답했다.

예수님과 내가 걷고 있었다.내 모습이 처녀같았다.

예수님께서 나의 양손을 잡아 빙빙 돌려 주시면서 나와 함께 웃으며 놀아주셨다.

그러더니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느니라.나와 함께 가자.”

그러고는 침대에 누운 내 몸에 다시 진동이 무지무지 강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어서 비명이 다 나왔다.비명을 지르며 속으로는 예수님께 부르짖었다.

‘예수님~~무서워요~~~!’

예수님을 잡고 싶어서 손을 막 저었다.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니 두려워 말라.”

그러시더니 내게 예수님이 확! 덮쳐오는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적 기운으로 완전히 덮으셨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몸에는 진동이 그쳤다.

곧이어 내 영혼이 마치 누가 나를 요람에 태운 듯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게 좌우로 흔들리더니 조금씩 크기의 폭이 줄면서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로케트가 좌우회전을 하면서 한 곳을 향해 돌지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요동이 멈추더니 내가 어디론가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포도알이 껍질에서 쏙 빠져나와 입 속에 빨려들어오는 듯한 느낌같다면 이해가 가능할런지.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진동이 강하게 임하기 시작했다.멈춘 듯 하더니 또 한 번 임하는 것이었다.

내 몸이 막 덜그럭거리며 침대가 요동치는 듯 했다.그러더니 잠잠해지면서 눈앞이 환해오기 시작했다.

아...예수님이다!

한참 소란을 떨며 두려움 가득 있던 터에 내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예수님의 양옆에 두 명의 천사가 흰 옷을 입고 같이 서 있었다. 언제든지 보면 예수님 곁에는 그 두 명이 거의 늘상 수종들고 있었다.

내 모습은 왠지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4-5세 정도로 보였다.

나는 예수님께로 아이의 걸음으로 막 달려가 그 품에 포옥 안겼다.

예수님께서 구부린 자세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반기시며 달려오는 나를 안아 예수님 팔에 걸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속으로 ‘어서 오느라, 오느라고 수고했다’라고 내게 말씀하심을 알 수 있었다.

천국문에 이를 때면 꼭 어린아이로 보이게 되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같은 믿음이라야 천국에 이를 수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임을 알려 주셨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예수님 품에 안겨 있으면서 좋아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 참 아름다워라~주님의 세계는~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아!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흐르는 시냇물, 들의 꽃들, 빛나는 황금길 가에 만발한 아름다운 그 광경..야트막한 언덕..

이번에는 화려한 칼라로 보여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언덕 저 너머 멀찍이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그림처럼 보이는 도성들이 보였다.

반짝거리며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도성들이었다.

그것을 보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후 주님께서 그곳으로 데려가셨을 때에야 그곳이 삼층천임을 알게 되었다.

와~~~!!

나는 연신 감탄을 연발해댔다. 말로는 이루 다 표현 못하게 아름다운 도성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고 싶었다.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였다.엄마가 언제 오셨는지 예수님 곁에 서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계셨다.

아..엄마! 워낙에 미인이셨던 엄마는 더욱 아름답고 젊은 모습으로 연한 핑크빛 한복을 입고 계셨다.

다윗도 그렇고 베드로나 바울.. 내가 만난 천국의 사람들은 모두 옷이 제각각이었다.

모든 천국백성들은 자기 취향에 따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워낙 한복을 좋아하고 또 한복이 잘 어울리시는 분이셨는데 천국서도 그 옷을 즐겨 입으시나 보았다.

내가 만났던 성경인물들과는 달리 엄마는 말씀을 안 하시고 그저 미소만 띄고 계셨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셔서 알게 되었다.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저번 날처럼 인간적인 사랑의 마음이 전혀 일지 않았다. 여전히 성도간의 사랑의 감정이었고 그저 좋기만 했다.

 

예수님과 엄마가 어린 모습의 내 양손을 각각 좌우로 잡고 함께 황금길을 거니셨다.

황금길을 타박타박 셋이서 걸으며 나는 마냥 흥겨워서 두 분과 맞잡은 양손을 빙빙 돌리며 행복해 했다.

그렇게 걷다가 한 연못에 다라랐다.연못을 앞에 보며 내가 가운데 앉고 예수님과 엄마가 내 양편에 놓인 연못가 바위 위에 각각 앉으셨다.

예수님께서 내게 미소띄신 얼굴로 물으셨다.

“좋으니?” “네에~!”

한껏 흥에 겨워 있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물을 한 모금 떠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이 물을 마셔보거라. 참 달단다.” 아.. 너무 단 맛의 물이었다.

지상에서의 내 몸이 움직이며 푸근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도 예수님처럼 내게 한 모금 물을 떠서 주시는 것이었다.그것도 받아 마셨다.

안 그래도 한껏 들떠 있던 내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되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몸이 실제로 천국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기를, 기분이 좋으면 “아~ 날아갈 것만 같애~!”라고 말들을 하는데 실제로 천국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음과 동시에 그대로 날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히고 흥분이 되는 것이었다.

하늘을 한 바퀴 멋지게 혼자 돌면서 아까 그 도성과 들판들을 보고 난 후 나는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예수님께서 다른 곳을 보여주시겠다며 나를 이끄셨.

엄마는 다시 엄마의 자리로 가신 것인지 보이시지 않았다.그런데도 왠지 내게도 찾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어린아이에서 처녀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그 모습으로 예수님과 함께 어떤 문으로 들어갔다.

아주 큰 홀같은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그곳은 크고 흰 건물로 된 성전이었다.

실내가 모두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와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입구에서 오른 쪽에 있는 큰 방으로 인도되었다.하얀 가운을 입은 곱슬러미 미소년같은 아름다운 천사가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천사의 뒤로 보이는 넓고 긴 벽에는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즐비하게 걸어져 있었다.그리고 그 위 선반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면류관들이 역시나 도열해 있었다.

 

천사가 내게 핑크색 드레스를 주었다.그 드레스를 입자 희한하게도 내 몸에 꼭 맞으면서 몸이 날씬해보이고 아주 이뻤다.천사가 면류관도 하나 씌워주었다.면류관을 쓸 때에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예수님도 옷을 갈아 입고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예수님은 마치 왕같이 보이시는 복장이셨다.

예수님께서 또 물으셨다.

“좋으냐?” “네에~!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서 자꾸만 함박웃음이 절로 나왔다.

처음에 들어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름다운 방의 오른 쪽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만조백관처럼 모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정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좌에 앉으셨다.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경배드렸다.

 

“어린 양 예수님께 경배드립니다..”그러면서 고개들을 숙이는 것이었다.나도 덩달아 예수님께 고개숙여 경배드렸다.

예수님께서 두 손을 들고 우리를 축복하셨다. “내가 너희를 축복하노라.”

그러자 모두들 “아멘!”으로 화답했고 나도 따라서 “아멘!”으로 화답했다.

에수님께서 그곳을 나서시고 다시 연못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연못에 대해 말씀해주셨다.“이 연못은 특별한 연못이다.

이 물을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며 이 물에 씻으면 모든 죄가 희어지느니라.”

그러시면서 내게 물을 주셨는데 내 속으로 물을 마시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물을 마실 때 지상의 내 육체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 온 속이 다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내 머리 위로 그 물을 끼얹으셨다.그러자 놀랍게도 내 핑크드레스가 하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이 물은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신다.그리고 내 백성 모두가 마신다.

이제 천국에 올 내 백성 모두가 마시게 될 것이다.”

그후 장소가 옮겨지는 듯 하더니 천국문을 나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과 나는 어느 사이엔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예수님은 면류관을 쓰지 않은 세마포 차림이었고 나는 평상복같은 옷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본 아비규환의 현장..그곳이 지옥이었다!

천국과 지옥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 것은 영적세계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곳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해주셨다.아브라함이 나사로를 안고 지옥에 있는 부자와 대화할 때 큰 구렁텅이가 있다고 하더니 그 정도 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26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지옥에 데려가시기 전에 먼저 기쁨의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신 후 지옥으로 데려오신 것이다.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고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어떤 일을 맡기시기 전에 미리 성령으로 채우신 후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가복음 1:10,12

 

지옥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앞에 조그만 감방이 하나 보였다.

아..그곳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신 저의 친척 한 분이 거기 계셨다.그 친척이 그 안에서 손을 벌려 내게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그 분께는 구더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왼쪽 얼굴은 구더기가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직감적으로 내가 아는 친척임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여기서 꺼내줘~!!” 손을 잔뜩 내밀고 애원하는데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슬프게 대답했다.“저는 힘이 없어요...죄송해요...”

아무리 혈연으로 묶여있어도 일단 그 생면이 끝나고 나면 어느 누구도 그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명있을 때 그 영혼이 구원받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그 호흡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예수님, 어떤 사람들이 지옥에 오게 되나요?”

"나를 믿지 않은 사람들, 나를 배반한 사람들, 나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 오게 된단다….

나는 단 한 사람도 이곳에 오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정말이지 진정으로 단 한 영혼도 이곳에 오기를 원치 않는다. 너는 가서 전하거라. 내가 정녕코 단 한 영혼도 오기를 원치 않는다고…!"

예수님은 너무 슬퍼하시며 고개를 외로 꼬으시고 아파하셨다.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아래로 불구덩이가 보였다.

불길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 손을 올리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주님~!! 우리를 여기서 구원해 주세요~!!”

그들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르며 부르짖고 있었다...!!! 그 고통을..그 간절함을.....어찌 글로 다 표현할까...!!!

내 영혼이 소리내어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구덩이 위쪽으로 시선을 따라 올라가 보이는 곳에 아까 본 조그만 감방 같은 것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그 속에도 각 방마다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해골의 모습으로 조그만 창살 밖으로 뼈만 남은 팔을 내밀고 있었다.

 

울고 있던 나는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 예수님께 다시 물었다.

“저 곳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가요?” “내 종들로서 나를 배역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하라고 은사를 주었건만 그들은 나의 영광을 자기 영광으로 삼고 자기의 배를 채웠다.”

나는 다시금 울기 시작했다.점점 그 소리가 커지며 엉엉~~ 통곡했다.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아픔은 바로 예수님의 아픔이었다.그 예수님의 아픔을 예수님께서 내게 느끼도록 하신 것이다.

울다울다 지쳐 주저앉았다.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하염없이 꺼이꺼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눈물머금은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울지말아라 딸아...” 그러시면서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예수님께서 다른 곳으로 이끄셨다.

다시 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희한한 것은 다시 천국으로 오고 나니 그 아픔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면서 금새 잊어지는 것이었다.

아까 들어갔던 흰 성전으로 들어갔다.아까 본 만조백관들이 여전히 거기 도열해 있었다.

이번에는 일렬횡대처럼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계단에 오르시어 이번에는 앉지 않고 보좌 우편에 서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빛으로 보좌에 좌정하셨다.

이후에도 보면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좌정하실 때면 늘 서 계셨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겸손이라는 것이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같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성자이시므로 스스로 겸손을 보이시어 성부 하나님 우편에 서시는 모습이 진정한 천국의 모습인 것이다.

 

사도신경의 고백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할 때처럼 예수님의 보좌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심을 알 수 있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때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완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코는 바닥에 대고 양팔은 위로 뻗은 모습이었다.

아까 모여있던 사람들이 찬양하기 시작했고 그들 또한 겸손하게 성부 하나님 앞에 고개 숙여 경외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성전은 말로 할 수 없는 경외심으로 충만하게 된다.

마치 풍선을 불다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포화상태와 같은 충만한 경외심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경외심은 두려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슴 저변에 가득 깔린 극히 깊은 존경심을 말한다. 하여간에 너무너무너무 아름답고 고상한 경외심으로 가득찬 하늘 성전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이후 영원히 살게 될 천국에서 우리 또한 그처럼 놀랍고 풍부한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며 경배하게 될 것이다...!

 

어느 틈엔가 내가 일어서 있었다.

일렬로 선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주 보는 방향에 혼자 어벙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내 백성들을 속히 구하기를 원하노라.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그 때 나는 속으로 ‘아..지금 이사야가 본 장면을 내게 구경시켜주고 있다보다..’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일렬로 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예수님께서 팔을 뻗어 나를 가리키며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었다.

“이 딸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허걱..!

너무 놀란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못한다고 말하려고 했다.당연히 못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틀림없이 성령님의 완전한 운행하심이 틀림없다.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께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아뢰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나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내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내게 금패같은 것을 주셨다.짧은 지휘봉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처음 받았을 때와 다르게 이후에는 보이지 않고 금패 자체만 보였다.

너무도 밝은 빛이 나는 금괴같은 것이었다.세로막대같은 홈이 두개 파여 있었고 금술이 금패 끝에 달려 있었다.

크기는 가로 5 센티 세로 7센티 정도로 보이는 것이었다.아니, 실은 그것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에 그 수치가 자동으로 떠올랐다.마치 암행어사 마패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들어 예수님께서 그 금패를 다시 보게 해주셨다.

그 패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딘가에 늘 내재되어 있나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곧 나타나는 것이었다.그런데 처음보다 좀 커져 있었다.

제법 커지니 그 패를 보고 놀라는 내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그 패는 더 커지고 위력적이 된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사)은 자꾸만 써야만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허공에 금패가 떠 있는데 그 뒤로 빛되신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의 형상인 빛은 세상의 빛과는 다르다.

세상의 빛보다 훨씬 더 밝고 환한 빛인데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햇빛과는 달리 내가 하나님의 빛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아름다운 빛되신 하나님께서 너무 아름다운 금패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주노니 악의 권세가 너를 해치 못할 것이다.

네가 고난을 당할 것이나 능히 이길 것이며 능히 감당하리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실 때 내 몸에 큰 진동이 임했다.나는 그것을 손에 쥐고 높이 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천사들이 날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천사가 나는 모습은 무지개 양끝에서 서로 마주보며 반원형으로 날아오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 주 여호와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하시도다~

 

그 후 날개달린 천사 한 명이 내게로 날아와 숯불화저(숯불로 달군 부젓가락)같은 것을 내 입에 대는 것이었다.

순간 그것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성경에 있는대로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 6:6-7

 

그런데 천사가 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다르게 말씀하셨다.

“네 입에 권세가 임하리라.” 아마도 숯불화저가 다양한 기능으로 쓰이는가 보았다.

그 선물을 받고 나니 지옥에서 아파하던 내 기분이 다시 회복되어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도 기뻐하심이 역력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끄시며 말씀하셨다.

“너와 나의 집으로 가자.”

「나의 집」이라고 안 하시고 「너와 나의 집」이라 말씀하시다니..! 예수님과 함께 사는 집이라니 너무 기뻤다.

다시 찾아간 집을 보니 더더욱 기쁨이 넘쳤다.집이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이 기쁨을..이 감격을..우째 이런 일이..며칠 상관에..!

집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푸르른 풀밭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전에는 못 보던 나무들도 여기저기 있었다.처음 보았을 때 황량하던 집 주변환경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집의 2층이 공사중이었다!놀라서 입이 안 다물어지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순종으로 집이 이처럼 빨리 단장되는 것이란다.”

그저 감사해서, 너무 감사해서 감사하다는 말조차 나오지가 않았다.

하나님을 아는 믿음도 지식도 순종의 마음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주시고는 또 칭찬하시고 이처럼 상급으로 쌓아주시는 하나님!

 

집안은 더욱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던 벽에 드디어 보석으로 집안 곳곳에 드문드문 장식이 되어 있었고 붉은 카펫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소파도 더 화려한 걸로 바뀌고 샹들리에 같은 등도 천장에 붙어 있었다.

화려한 침대로 나는 달려가서 폴짝 뛰어 올랐다, 너무 좋아서.그리고는 이리저리로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가까이 오셔서 내 곁에 함께 누우셨다.

 “좋으니? 기쁘니?”

나는 너무 좋아서 말도 못하고 예수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예수님께서 팔을 괴고 모로 누우셔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는 것처럼 동시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집에 함께 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너는 그걸 알아주니 내가 기쁘단다." 그러시더니 일어나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을 꼭 끌어안은 채 도리질을 치며 내가 말했다.

“예수님! 나 안 내려가고 여기 천국에서 살고 싶어요!” “아니다.. 네가 가서 할 일이 있다.

네가 본 것을 책으로 내고.. 내 백성들에게 알려야지, 내가 온다고.. 응? 어서어~.”

예수님께서 나를 달래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막무가내로 안간다고 칭얼댔다.

“그럼 좀만 더 있다가 갈께요..네?”

몸까지 틀어가며 졸라대니깐 예수님께서 하는 수 없이 “그래 그럼.. 조금만 더 있다가..” 하시며 허락하셨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나를 소파로 이끄셨다.예수님은 3인용 소파에, 나는 2인용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 과일이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청포도같이 생긴 과일을 예수님께서 한 알 따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입으로 받아 먹고 나도 예수님께 한 알 따서 드렸다.예수님께서 웃으시며 손으로 받아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예수님께 석류 비슷하게 생긴 과일을 드렸더니 그것도 기쁘게 받으시며 웃으셨다.

나는 몸이 냉한 체질이라 찬 음식인 과일을 싫어했다.

그래서 전혀 과일을 먹지 않았었는데 천국에서는 내가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는 체질을 과일체질로 바뀌고 몸도 따뜻해지게 해주셨다.

뿐 아니라 육류만 먹고 야채는 전혀 먹지 않던 체질도 완전히 바꾸어 주셨다.

수십년 된 체질조차 주님은 한 순간에 바꾸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나, 둘이 마주 보고 웃으면서 과일을 먹다가 집 바깥으로 나왔다.

예수님과 정신없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뛰어 놀았다.

숨바꼭질하며 내가 숨으면 예수님께서 찾아내고 하면서 놀았는데 나는 너무 기뻐서 손뼉을 아주 많이 쳤다.

 

천국에서 기쁘면 손뼉을 치는 일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지상에서도 무슨 기쁜 일이나 감사할 일에도 두 손을 높이 들고 감사의 박수, 찬양의 박수를 치며 주님께 영광돌리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렇게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주님은 무척 기뻐하신다.

그러면서 영광돌리는 두 손에 기름부음이 임하는 것을 자주 체험케 된다.

주님처럼 감사를 못받으시는 분이 어디 계실까!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내게 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크고 많은 일에 대해 너무나 감사가 적은 우리들이다. 아니, 어쩌다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에 대해 오히려 감사는 커녕 불평하기 일쑤인 우리들... 그 일을 분노하시는 것보다는 슬퍼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마음껏 올려드린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편 47:1

 

내가 천국에서 느끼는 감정대로 지상에 있던 내 육체는 반응하고 있었다.

내가 웃으면 내 육체도 웃고, 내가 울면 울고 손뼉치면 손뼉치고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즐겁게 놀다가 문득 고개돌려 옆을 보니 세마포를 입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해서 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 어디 가는 거예요?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고는 나를 그리로 데려가셨다.

아까 그 하얀 성전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천사 두 명이 문 앞 양쪽에 문지기처럼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 이층 뒤쪽 위에서 내려다 보듯이 자리해 있었다.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이다.

사람들이 보좌를 향하여 빼꼭히 서서 일제히 웅장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성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찬송가 9장이었다. 성전 가득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찬양이었다.

하늘 성도들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아름답고 장대한 광경을 보는 것을 끝으로 나는 다시 큰 숨을 쉬며 지상의 육체로 돌아와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십 대에 내게 있어서 천국은 그다지 흥미로운 곳이 아니었다.아니 오히려 지겹고 고리타분한 곳이라 여겼다.일주일에 한번 교회가는 것도 힘든데 그것도 맨날 아니 영원히 예배를 드리다니..!

천국은 그처럼 내겐 너무 재미없는 곳이었다.그래서 약은 생각을 나름 했었다.

‘지옥가기는 싫으니 세상에서 실컷 놀다가 이따이따 요담에 늙어서 예수믿고 천국가야지..’

이렇게 스스로 인생의 플랜을 짜놓기도 했었다..ㅋ

누군가가 나를 교회로 데려갈까봐 마냥 피해다녔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이전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와 천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래서 자꾸만 점점 더 멀리 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기의 반을 살고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매력이 넘치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 매력에 빠져 하늘성도들도 지겨움없이 저렇게 영원히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14

 

지존자여 십련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편 92:1

 

인간의 매력에는 한계가 있다.사람을 오래 사귀면 사람 냄새가 난다.그런데 주님의 매력은 한도 끝도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향기가 물씬댄다.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능력인 것이다.

그 능력이 바로 주님과 사귀면 사귈수록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쉬임없이 흘러나옴으로써 영원히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

 

주님의 방문과 대화/ 2007년 1월 25일 밤

 

마지막 때에 관하여

 

집안은 최근 들어 썰렁하다.

주님께서 자주 나를 뜨거움 속에 두시므로 아예 히터를 끈 것이다.그리고 전기매트도 너무 더워서 꺼 둔 상태이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다 자려고 침대에 올라 책을 읽고 있었는데 시트가 너무 따뜻했다.

혹시 매트를 켜뒀었나 싶어 확인해보니 꺼진 상태였다.그런데 점점 몸이 뜨거워 오는 것이었다.

너무 더워서이불을 모두 걷어치웠다.그리고는 베개를 베고 모로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전기충격처럼 내 몸을 강타했다.

몸이 실제로 크게 튕겨졌다.계속해서 강한 진동과 충격이 막 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덮고 똑바로 누웠다.주님께서 오시는 것임을 이제는 훈련되어져서 알게 된 것이다.

몇 번의 진동과 더불어 내 몸이 서서히 경직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두 손은 앞으로 나란히 하는 것처럼 구부린 채 앞을 향했다가 가지런히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두 번째 데려가실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내 침대 머리맡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뺨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 사랑하는 거 아시죠?”

“그래 나도 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잖니.” “오늘도 우리 천국가나요?”

 

빙그레 웃으며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 오늘은 너랑 이렇게 대화하고 싶구나.”

그것이 마지막 때에 관한 일임이 저절로 깨달아졌다.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가요?” “그렇다. 나는 너와 마지막 때에 관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너는 내 말을 잘 기억했다가 사람들에게 내가 알리라고 할 때 알려야 한다.”

“주님, 마지막 때의 징조는 무엇인가요?” “네게 이미 말했다시피 큰 기근과 징조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미워하며 반목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돈을 사랑하기를 나를 사랑함보다 더할 것이다.”

“음.. 그거는 성경에 나와 있고 주님이 저번 날 말씀하셔서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묻는 것은.. 휴거 직전에 있을 징조가 뭔지 궁금해요.”

"내가 전에 네게 보여준 환상이 기억나느냐? 그것이 마지막이 왔다는 징조이다."

 

지난 2006년 12월 경, 예수님께서 내게 휴거되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적이 있다.

기도하던 중 갑자기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러더니 너무 아름다운 새하얀 뭉게구름이 하늘 위로 한 점 보였다.

잠시 후 땅에 있는 사람들이 실루엣 모양으로 조그맣게 보였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동시에 구름으로 슝~하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즉시 ‘아, 휴거다!’라는 생각에 놀람과 기쁨과 감격으로 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보여주신 직후 주님께서 받아적으라 하셔서 받아적어둔 글이 있다.

아래 글은 약 30초 동안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적어내려 간 내용이다.

 

********** ********

 

대환난이 일어나기 전 큰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천지가 어둡겠으며 나를 찾던 자들이 나를 배반하리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탐하여 그 정도가 극에 달하리라 너는 미혹되지 말며 깨어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나의 말씀에 착심하고 지켜 행하되 무엇보다 사랑을 행하라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느니라

사랑 앞에 그 어떤 마귀 사탄도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가리라.

내가 올 때에 깨어 기도한 종들은 나의 때를 미리 알고 준비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한 곳에 모으리라.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라.홀로 서 있는 자는 넘어질진저. 두려워 떨며 기도에 힘쓰라.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이전같지 않은 큰 능력과 믿음을 주어 내가 도우리라.

(여기까지 쓰고 나는 너무 숨이 가빠서 잠시 멈추었다. 잠시 후 내가 글로 물었다.-기록자 주)

주님 휴거는 언제 있을까요?

(그 부분은 대답지 않으시고 이렇게 적으셨다.)

환난을 별로 맛보지 않고 나의 택한 종들은 들어 올리우리라.

 

****** ******

 

주님께서 위의 글을 받아적으라고 하실 때 손으로는 글을 쓰면서 눈으로는 지식이 임했다.

그 3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어쩌면 그렇게 많은 깨달음을 주시는지 순전히 주님의 능력일 뿐이다.

 

대환난이란 아는 바대로 7년대환난을 의미한다.그 대환난이 일어나기 전 큰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하셨다.

천재지변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현재 지엽적으로 군데군데 일어나고 있지만 그 시기에는 지구 전반에 걸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남을 의미한다.천지가 어둡다는 것은 영적 암흑시기가 대환난 전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지금 폭포수처럼 내려지고 있는 성령의 늦은 비 역사가 끝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 성령의 기름을 내 영혼에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비축해 두어야 한다.

“나를 찾던 자들이 나를 배반하리라”

이 말씀은 영적 암흑시기가 되면 여태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던 자들이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영적 암흑시기에는 동성애가 더더욱 판을 치게 되는데 주님은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면서 깨어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또한 깨어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면 이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게 하실 때에는 이미 승리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하라 하시면 순종하여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영적 암흑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말씀과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으므로 사랑이신 주님을 묵상하고 사랑으로 행하고 나의 행실에 사랑이 있나 없나를 살펴 오직 사랑으로 매사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 무기이므로 말씀을 많이 읽어두어야 한다.

주님이 오실 때에 깨어 기도한 종들은 주님이 오실 때를 각자에게 알려 주신다고 하셨다.

그 날과 그 때는 물론 모른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르실 이들에게는 재림 직전에 미리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깨어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본인이 죽을 날을 대략적으로 미리 알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에 비교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베드로도 그러했고 바울도 그러했던 것처럼.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후서 1:14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디모데후서 4:6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 자녀들을 한 곳에 모으리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이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도피성이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주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여러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분이시므로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신 이해로는 사악한 세상 속에서 주님 자녀들이 서로 연합하여 연계된 사역을 함으로써 서로 격려하며 중보하여 힘을 합하도록 하시겠다는 의미로 본다.

실제로 사역을 하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주님의 신부들 혹은 준비된 일군들을 만나게 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감으로써 큰 위력을 발휘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6

 

그래서 주님은 히브리서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신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그때에 홀로 신앙생활한다고 자만하고 있다가는 큰코 다친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였던 세상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악하고 더더욱 음란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 조차 힘을 합하여 주님 자녀들을 지옥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데 홀로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워 떨며 나는 구원해 주시기를 힘써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할 것이 없음은 주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때에는 이전보다 훨씬 큰 능력과 믿음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환난을 별로 맛보지 않고 들려 올리운다는 것은, 대환난 전에 는 영적 암흑시기에 있을 재난을 겪고 대환난 전에 들려 올리신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이 부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줄 안다.

들려올리울 시기에 관하여는 각자의 믿음대로 받으시기 바란다.

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때건 주님께서 부르실 때 내가 들려 올리울 준비가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임을 깨우쳐 주셨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모든 말씀들이 결국 성경에 쓰여져 있는 말씀들이다.

다시 말해서 수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오신 말씀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굳게 서야 한다고 주님께서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주님께서 또 한 장면을 보여주셨다.

흰 천을 머리에 덮고 테를 두른 키가 좀 큰 아랍사람과 양복을 입은 중년보다 조금 더 나이들어 보이는 키가 작달막한 남자가 서로 손을 잡고는 환한 표정으로 잡은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는 모습처럼 나란히 단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두 국가가 서로 정치적 동맹을 맺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내게 그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것을 깨닫게 해주신 예수님께서 또 한 장면을 보여 주셨다.

내 오른 편으로 군모를 쓰고 있는 군인의 옆모습이 보였다.순간적으로 중국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있었다.왼편으로도 하나의 장면이 보였다.군대가 서로 정렬하여 포를 쏘고 있었다.

미사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양쪽이 대치하여 치열하게 전투중이었다.

최근에 주님께서 중국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중국은 이스라엘 선교를 위하여 쓰임과 동시에 사단의 도구로도 쓰인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크리스챤들은 이스라엘을 선교하는 영적전쟁을 위의 환상처럼 치루게 되고 반면 정부차원에서는 이스라엘과 정치적 대적관계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환상을 처음 보았을 때 실은 속으로 좀 의아스러웠다.

‘지금 시대에 일렬로 나란히 서서 총싸움을 하고 있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영적전투를 나타내는 모습이라는 주님 말씀에 이제야 이해되는 것이다.

그 장면을 다 보고나니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본 그대로 마지막 때에, 휴거 직전에 중국과 아랍 에미리트의 연합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투하리라. 그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되물었다. “주님, 아랍 에미리트가 뭐예요?”

“아랍 에미리트란 아랍 소국가들이 자국보호책으로 서로 연합한 단체국가를 말한다.”

 

나는 깨어난 후 인터넷에서 그것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너무 놀랍기만 했다.

다음은 아랍에미리트에 관해 인터넷 「미전도종족 기도정보」에서 검색한 내용이다. 

 

아랍에미리트 (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 연합은 7개의 왕국 또는 에미르 관할국의 연합으로 되어있으며 페르시아만 연안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해있다. 이 나라는 석유자원에 의존함으로써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단 25년만에 가난에서 번영으로 이끌어주었다.
아랍에미리트는 과거 영국의 보호를 받던 7개의 별개의 군주국이었지만, 1971년에 연합국가로 통일되었다.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지만, 다른 소수의 종교에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 미전도종족인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도시의 교육받은 자나 시골의 문맹자나 상관없이 모두 복음에 거의 접촉해본 적이 없다.

 

휴거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휴거되리라..“우리 가족은요?” “너희 가족은 걱정마라. 내가 사랑하는 자들은 단 한 영혼도 잃지 않고 모두 휴거되리라.”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가 휴거되리라.” 살아서든 죽어서든 나와 아버지가 휴거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8

 

그리고는 연이어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는 이제 나를 믿기 시작했다.

조금의 연단을 더 받아 믿음을 굳게 하여 휴거의 영광을 주려 한다.”

당시 예수님을 영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81세의 아버지셨다.

그대로 데려가시면 상급이 너무 없다는 주님 말씀이셨다.

그러므로 상급을 더 쌓게 하셔서 영원히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배려셨다.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이유는 상급을 쌓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본향은 저 아름다운 천국이다. 이 험한 세상에 자식을 오래 살도록 내어버려 두실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식과 떨어져 살며 기뻐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더우가 그 자식이 살고 있는 곳이 척박한 땅임에야!

그럼에도 이 땅에 여전히 우리를 두시는 이유는 상급을 쌓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는 육신의 아버지의 천국집이 날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가고 있음을 믿음으로 본다.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고 천국을 뜨겁게 사모할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드린다.

 

내 질문에 답하신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가족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네게 붙이는 영혼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라.

내가 그것을 기뻐하노라.” “네..알았어요 주님.” 갑자기 겸손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어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왜 제게는 다른 이들이 본 것같은 천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시나요?”

예수님께서 소리없이 웃으시고는 다시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쉬웠나 보구나. 각자에게 보여지도록 허락된 부분이 다르단다.

다른 이가 본 것은 천국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네가 본 것도 극히 일부분이다. 천국은 무한광대하며 무궁무진하다.

네가 나중에 오면 그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으리라.

다만 지금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허락된 것만 보여준 것이다.”

 

“주님, 왜 저는 천국간증책을 보면 기쁜 것이 아니라 슬픈 마음이 들까요? 기쁘고 싶은데...”

“너에게 내 마음이 전달되어서이다...

나는 내 백성이 천국에 올 때까지 그 마음을 여전히 지닌 채 있을 것이다.

네가 책을 내어 이 내 아픈 마음을 전달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음성으로 답하신 예수님께서 여전히 저의 뺨을 쓰다듬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뺨을 쓰다듬으시면 내 마음에 깊은 평안이 임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셨다.

“이제 가야겠다. 네가 피곤하다.이제 푹 쉬거라.”

그러시고는 나를 한 번 안아주고 이마에 입 맞추고 가셨다.

경직되어 있던 내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깊은 단잠에 빠졌다.

 

네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6일 낮

 

박물관가룟 유다ㆍ외할머니

 

이상하게 며칠 전에 선물받은 천국에 관한 책을 읽고 있으면 뜨거움이 자주 오는 것이었다.

아까도 그랬다.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이 몸에 진동이 오는 것이다.

이러실려고 주님께서 나에게 이 책을 주셨는가 싶을 정도였다.

 

책상에서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진동이 오는지라 다시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아까 책상에서처럼 진동이 일지는 않았고 대신 방언기도가 나왔다.

누운 채 기도드리는데 진동이 또 다시 오기 시작했다.

누워서 기도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져서 일어나 기도하려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몸이 거의 뜨는 것처럼 진동이 오고 있었다. 침대에 걸터 앉았다.

온 몸이 다리까지 뻗쳐 진동이 거침없이 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이처럼 진동이 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후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죄성을 지닌 육체 가운데 있는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동을 통해 성령으로 온전히 사로잡히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후로는 점점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게 되면서 차츰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 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진동하지 않고도, 굳이 눈을 감지 않고도 천국을 쉽게 데려가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에도 그럴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실 때 내 손아귀 가득 세상의 것을 쥐고 있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사는 동안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아야 주님이 우리를 쉽게 데려가실 수 있다.

그것은 외적인 환경이나 물질 뿐만 아니라 나의 내면적인 것 즉, 이기심과 아집, 자기애와 고집이나 시기질투 등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내면의 마음들이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다루어져 갈 때 주님은 우리를 기쁘다 하시며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주님의 음성을 더욱 자주 들려주실 것이다. 진동이 오기 시작하더니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주님,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세 번 화답했다.예수님께서 침대 머리맡에 서 계셨다.

예수님께서 내 이마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내 딸아...”

예수님께서 이마에 손을 얹으니 진동이 점점 가라앉았다.

그러면서 어느새 내 영혼을 예수님께서 만지고 계심이 느껴졌다.

예수님과 내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예수님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왼팔에 올리시더니 안고 걸어가셨다.

나는 예수님 목을 끌어안고 머리를 예수님께 파묻고 좋아하며 말했다.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께서 말없이 나를 안고 등을 쓸어주셨다. 그리고는 한 지점에 앉아 나를 예수님의 왼쪽 무릎에 앉히시고 안고 계셨다. 그런 상태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등을 토닥이셨다.

나는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울음이 나왔다. 예수님께 안겨 소리내어 울며 눈물을 흘렸다.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사랑한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신다.

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사랑한다는 말씀을 아주 많이 하신 후로 내 아픈 상처들이 모두 치유받은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먹고 산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산다.

부부는 배우자의 사랑을 먹고 산다.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이처럼 사랑의 고백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이다.

굳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속으로 품고만 있지 않으시고 내가 알 수 있도록 말씀하셨으므로 표현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신이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표현되지 못한 사랑 속에 많이 아파하며 신음하고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시고 “사랑한다 사랑한다”라고 무수히 말씀해주시면서 온전히 치유해주신 것이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이전처럼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주 안 하신다. 이제는 그 말씀을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처가 다 나았으므로 다른 이들의 마음도 오해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는데 그곳이 지옥임을 알 수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거기 가야 되요?” “네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네가 본 것을 알려야 하느니라.”

“예수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성령님께서 내 입에 주시는 내 영혼의 고백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고백이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내 고백을 듣더니 기뻐하셨다.

“내가 너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믿음이다. 그래서 내가 너를 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이런 고백을 하도록 인도하시고는 또 이처럼 칭찬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안은 채 일어서셨다.

“자, 이제 나와 함께 가자.”

그리고는 함께 하늘을 날으셨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듯 하더니 하늘 한 구멍, 작은 구멍 같은 곳으로 쏙 들어가셨다.

 

이 작은 구멍이 「열린 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에 뚫린 작은 구멍이 열린 문인가 보다.

예전에도 나를 진동 가운데 쏙 들어가게 하셨던 곳이 이런 작은 구멍이었다.

뿐 아니라 열린 문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어느 곳이든지 장소를 바꾸어 열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4:1

 

천국문에 도착한 예수님과 내 앞에 보인 이는 의외로 아브라함이었다.

그가 서서 우리를 반겨 맞았다.

예수님 영화에 나오는 예수님 복장같은 흰 옷을 입은 아브라함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오느라고 수고했다.”

나 역시 반가움에 그의 왼 팔을 내 팔로 감싸안고 기대며 안겼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그간 세상에서 겪은 일을 다 안단다. 믿음으로 이겨낸 것을 내가 기뻐한다.”

천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전지해진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보는 순간 나에 관한 통찰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당에서 사역하실 때 그러하셨고 또한 성령충만한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천국에 있는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으로 지배받는 분들이므로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여전히 그에게 안긴 채 내가 말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기를 바래요.

저에게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실 수 있나요?” “그럼 줄 수 있고 말고.

너는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주님은 그처럼 전폭적으로 믿는 자를 기뻐하신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즐겨 말하지.

그러나 정작 이삭을 드리는 자는 없다. 주님은 그들이 내려놓기를 원하신다.그러면 주님이 더욱 복을 주실 수 있을테니 말이다.특히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님 위에 두는 경우가 많다. 주님은 그것을 슬퍼하신다.

그래서 그처럼 내려놓기를 원하며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주님은 그런 믿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주시라고 내가 주님께 부탁드리겠다.”

너무 쉽고 좋은 아브라함 할아버지였다.

 

예수님과 내가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눈앞에 늘 보던 하얗고 큰 성전이 보였다.

우리는 크고 흰 문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크고 화려한 성전 오른 편으로 있는 큰방으로 들어갔다.

천사가 미소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가 나에게 가운들을 가리키며 무슨 옷을 입을지 묻는 듯이 보였다.

예수님처럼 하얀 옷이 입고 싶었다.

“흰 걸로 입을래요.”

천사가 미소띈 얼굴로 나에게 흰 가운을 입혀 주고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예수님도 화려한 면류관과 빛나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보고 계셨다.

그 분을 향한 무한한 경외심이 들면서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경배드렸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일으키시고 다시 그 방을 나와 큰 성전으로 가셨다.

어느 새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 계셨고 나는 성전 중앙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언제 있었는지 예전에 섰던 자리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운을 입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무리져 서 있었다. 그들과 나는 일제히 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유월절 어린 양 예수께서 모든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셨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그만하라는 것처럼 손을 드시니 그들의 찬양이 멈추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내 딸을 통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는 내 딸을 위하여 기도할지어다.”

그들이 고개숙여 “아멘..!” 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런 벅찬 감격이! 나도 감사함에 “아멘..아멘...!”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다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다.

 

♬ 주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영원 영원 무궁하시도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셔서 한 곳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어딘데요?” 그냥 가면 되지 왠 호기심이 이렇게 많은 건지..ㅎㅎ

주님은 어떤 해프닝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데 이 일도 그래서 허락된 해프닝이다.

주님에 대한 지식과 신뢰감이 적은 자들일수록 주님에 대해 의문도 많고 반문도 많은 것이다.

반면 진정으로 그 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깊이 아는 분들일수록 주님을 향한 질문이 적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요한계시록 14:4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다.

“새 예루살렘이다.  네가 그것을 보고 알려야 하리라.” “아, 네에...”

말로만 듣던 새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하늘을 날았다.

한껏 부풀은 마음과 더불어 하늘을 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었다. 좀 있어서 예전에 잠시 보았던 그 화려한 도성이 보였다. 예전에 내가 보았던 곳이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묻기 전에는 일일이 다 말씀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당시에 그곳을 보면서도 어딘지 몰랐던 것이다.

그 상공을 몇 바퀴 돌다가 성 안의 한 지점에 도착했다.

예수님과 내가 손을 맞잡은 채 마주 바라다 보는 곳에 성같은 큰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퍽이나 크고 웅장했는데 입구까지 계단이 높이 놓여져 있었다.

“여기가 어딘가요?”(또 물어보네..ㅎㅎ) “박물관이다.”

그 계단을 예수님과 내가 함께 손잡고 걸어 올라갔다. 내부에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주로 발명품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디슨의 발명품.. 내 머리 속에 에드신이 떠올랐다.

그가 발명했다는 전기도 있었는데 전기가 전신주 같은 코드에 연결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전화, 자동차, 배, 비행기 등등... 마치 골동품을 보고 있는 듯 신기했다.

이 부분에 대해 작업만 하려고 하면 자꾸만 내가 나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전기]에 관하여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세 번씩이나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이름이 나로서는 처음 알게된 생소한 이름 「니콜라 테슬라」이다.

주님은 내게 니콜라 테슬라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잇는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교류전기는 에디슨이 아닌 니콜라 테슬라의 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일러주시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 실제의 진실과는 다른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동안 바리새인들로부터 귀신이 들렸다는 엄청난 모함과 비방을 들으셨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12:24

 

예수님 뿐 아니라 현재 주님을 섬기는 많은 이들이 터무니없는 모함과 비방을 듣고 아픔을 겪고 있다.

그것은 주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로부터인데, 그들이 경건의 능력이 있는 자들을 향하여 주로 하는 말이 귀신들렸다, 이단이다 라고 하는 말들이다. 진실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이들은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어찌 감히 함부로 판단하며 근거없는 말로 하나님의 피조물을 비방할 수 있으랴!

경건의 능력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행치 않는 것이다. 에디슨의 전기라고 알고 있던 것을 주님께서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라고 드러내심 같이, 모든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0:26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내가 그들에게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주어 만든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나의 지혜로 이것들을 만들고 유익하게 이용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쁘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주님의 창조물이라는 말씀을 듣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주님, 저는 바퀴벌레랑 쥐를 싫어하는데 왜 그런 걸 만드셨나요?”

예수님께서 고개를 젖히고 소리내어 웃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니 물어본 나도 웃음이 나와 둘이 소리내어 한참 웃었다.

천국은 이처럼 웃음이 전염되는 곳이다.

그래서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서 성령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웃기 시작하면 그 웃음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한참 웃은 후 예수님께서 여전히 미소를 머금으신 채 내 머리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생각은 네 생각보다 높단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9

 

“추한 것들을 보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게 되지. 그런 추한 모습을 볼 때 자신을 비추어 보며 추한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해달라고 소망하며  살기를 바라는 뜻이 그 창조물 속에 내포되어 있단다.”

아하!  추한 것을 볼 때마다 내 추한 모습을 떠올리며 회개하고 근신하며 살라는 말씀...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참으로 깊디깊은 하나님의 경륜과 마음쓰심에 저절로 경외심이 마음 가득 차오르는 것이었다.

 

계단을 내려와 예수님과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거리의 모양은 마치 용암이 굳어서 물결모양을 이루는 것 같은 황금색 길이었다.

이전에 유럽여행 때 본 길과도 비슷한 길 위에 황금색 용암을 부어놓은 것 같았다.

“예수님! 마치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기쁨으로 가득차서 예수님께 외쳤다. 예수님께서도 기뻐하는 나를 보시며 함께 기뻐하심이 느껴졌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게 되리라.” 계속 기뻐하며 빙빙 팔을 돌려가며 춤추듯 걸었다.

그런 내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나의 등 뒤에서 부모의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마음깊이 기뻐하심이 여실히 느껴져왔다. 그러시더니 길 한 가운데에서 나를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딸아..네가 돌아와서 난 너무나 기쁘단다... 네가 이 모든 걸 누리게 되기를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 말씀을 하실 때 나에게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밀려오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주님..너무 죄송해요..그동안 주님을 아프게 해 드려서...”

고개를 예수님 품에 파묻고 하염없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함께 우시며 말씀하셨다.

“아니다, 내가 허락한 연단이었느니라….

내 허락이 없이는 사망권세가 너를 몰아가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를 쓰고자 허락한 연단이었다.

그러나 네가 그동안 아파하며 괴로움 속에 몸부림칠 때 나도 너와 함께 아파하며 눈물 흘렸느니라….

이젠 되었다. 잘 견디었다. 나는 이제 너무 기쁘구나.”

예수님과 내가 한 몸처럼 서로 안고 울었다.

예수님은 하염없는 기쁨으로, 나는 기쁨과 죄송함이 어우러진 마음으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금 눈물난다.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그 깊고 그윽하신 사랑...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주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떤 분은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시는 듯 하다.

주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세상적인 것을 겪게 하셨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로마서 3:8

 

내 안에 있는 죄된 속성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끌려가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내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지난 죄악을 용서해주시는 한편, 죄악된 삶을 유익된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주받을 인간이 축복받을 자녀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죄된 삶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게 되므로 할 수 있는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공폭포를 축소해둔 듯한 모양으로 된 작은 폭포가 있었다.

2 미터가 좀 안 되어 보이는 높이였는데 그 안에서 폭포수가 돌돌거리며 아래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흐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너무 놀라서 외쳐댔다.

“어머! 어떻게 물이 거꾸로 올라가죠? 신기하네?”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이보다 더한 것도 네가 보리라.”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이후에 보여주실 것이 또 있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가자.” 하시더니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다시 날기 시작했다.

그곳을 지나 아래로 푸르른 풀밭 경치들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 지상을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어떤 담을 지나 내려선 지역이 천국 바깥임을 깨달았다.

또한 그곳이 지옥임을.

생각해보니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천국을 먼저 보여주시고 지옥을 보여주셨다.

아마도 여린 내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 주시려는 배려라고 느껴졌다.

내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네가 감당할 수 있으리라. 네가 이것을 전해야 하므로 내가 네게 보여주노라.”

그러시더니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다. “평안할지어다.”

숨을 들이마시자 곧 내 안에서 평안함과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었다.

 

발 아래 불 구덩이에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손을 위로 치켜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눈물은 나지 않고 마음 가득 슬픔만 차 올랐다.

사람들이 불길 속을 이리 피했다 저리 피했다 하면서 계속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예수님게서 그곳을 지나 한 문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시커먼 철문같이 생긴 입구 양쪽에 뾰족한 뿔달린 무섭게 생긴 마귀들이 보초처럼 지키고 있었다.

누구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한 천사임을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뾰족한 창을 들고 무섭게 버티고 서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니 예수님께 경외심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앞을 향해 서 있었는데 예수님을 향해 둘이 마주 보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10-11

 

타락한 존재인 마귀들도 예수님 앞에서는 그 이름과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마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 바짝 붙어서 뒤따라갔다. 긴 복도가 시커먼 곳에 좁고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양 옆에는 조그만 독방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창살틈으로 팔을 내밀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예수님께서는 몹시 슬픈 표정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막 지나간 오른쪽 뒤편에 한 사람이 험악하고 시커먼 얼굴로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저 사람은 누군가요?” 예수님께서 그럴 수 없이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많이 사랑한 내 종이니라. 내가 그를 사랑하여 아름답게 하였고 아름답게 찬양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이름 위에 자기 이름을 두고 나의 능력으로 자기 능력을 삼아 사모하는 숱한 여인들을 농락하였느니라. 그들과 간음하였으며 그들의 가정을 파괴하였다. 나는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을 미워한다.

나는 그를 돌이키려 애를 썼으나 그가 자기의 마음을 마귀에게 내어주고 사단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지금은 저처럼 회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나서 곧 그에 관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의 외모는 출중했다. 그는 아름답게 찬양하며 사역하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를 사모하는 많은 여인들이 두 손을 모으고 그를 우러러보면서 황홀해 했다.

그가 그녀들을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그녀들을 여기저기에서 육체적으로 농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님은 그를 회개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예수님께서 서글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들에게 준 자유의지를 존중하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어찌할 수 없단다. 그게 내 아픔이란다.

나는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가 너무도 많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있음을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사망이 그를 사로잡아갈 때 내가 허락했단다….”

예수님의 아픔이 나에게까지 느껴져 와서 더 이상 질문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긴 복도 끝 막다른 곳에 조그만 감방이 있었다.그 안에 있는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손을 내미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듯이 보이는 그곳을 나는 호기심에 들여다 보았다.

거기 한 사람이 문쪽으로 등을 보이고 구석 모서리에 고개를 파묻은 채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있었다.

두 손을 머리에 사 안고 끊임없이 오래도록 그 모습으로 있는 듯이 보였다.그는 예수님께서 오셨어도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는 내게 예수님께서 내 뒤편에 서신 채 말씀하셨다.

“가룟 유다이다.”

아!! 가룟 유다...!  예수님께서 역시 깊은 슬픔으로 말씀하셨다.

“그는 머리가 영리한 나의 사랑하는 제자였다. 그러나 그는 나를 자신의 인간적인 계획에 이용하려 하였다.

나를 자신의 계획 속에 넣어 조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걸 다 알고 있었다.

그를 위하여 나는 기도했으나 그의 인간적인 생각이 너무 큰 고로 사단이 그 생각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후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그의 생명까지도 스스로 판결을 내리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그는 구더기와 같은 형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 속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번민으로 고문당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과 번민에 싸여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하루 이틀도 고통스러운 그 번민과 괴로움을 가룟 유다는 영원토록 싸안고 있어야 한다니...

그를 향한 하염없는 연민이 치솟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가룟유다에 대한 묵상을 하다가 이와 비슷한 생각이 들어 묵상노트에 내용을 적어두었던 기억이 났다. 내 속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너에게 그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내가 너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어 깨닫게 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7-19

 

나도 모르게 경외심이 가득차 올라 가룟유다의 감방 앞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마음눈을 밝혔은즉 너는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은 바를 내 어린 양들에게 먹이고 나누어 주라.”

기독교 안에 스며들고 있는 인본주의가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낀 것이다.

특히 나는 아집이 강하던 인간이므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나에게 그를 보게 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수님께 감사드렸다. “주님, 저를 구원해주시고 베푸신 은혜 무한 감사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손을 보여주셨다. 손바닥 구멍에 하얗게 빛이 나고 있었다.

왜 여태 예수님과 있으면서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아는 것은, 주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손바닥을 보니 발도 보고싶었다.그러나 발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았다.그러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나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

내 영혼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다. 나는 큰소리로 찬양하며 “할렐루야”를 크게 여러 번 외쳤다.

그리고는 춤추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면서 그 감방문을 나왔다.

다시 아래로 불구덩이가 보였다. 잠시 내가 아는 누가 여기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아!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모르고 돌아가셨지!’

외할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왼쪽 위편으로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나를 향해 애처롭고도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쳐들고 나를 부르고 계셨다..!

할머니..할머니..!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서 어리광을 부리며 놀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시면서 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 채로 예수님께 기대어 끊임없이 소리내어 울었다.

예수님께서 왼팔로 내 어끼를 감사 안으신 채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녀가 세상에서 선하게 산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나를 전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죽으면서 죽음의 사자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영혼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느니라.

누군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좀 더 일찍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이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그랬더라면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련만…! 그래서 할머니도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사실 수 있었으련만…!

부모님께 드리는 가장 큰 효도는 바로 그 영혼이 천국가도록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한동안 할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렸다. 단 한 번도 가슴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 영이 육체를 떠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른다.

육체를 가졌기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도록 부모님께 복음을 전해야 한다.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님의 영혼구원, 그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 뒤돌아 내 어깨를 안고 가시는데도 나는 울며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모습을 좇아 나를 쳐다보며 애원의 눈초리를 보내고 계셨다.

나는 눈물를 멈추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고 울고 울었다.

예수님께서 우는 나를 달래듯이 말씀하셨다. “네가 아는 사람이 지옥에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의 집으로 가자.” 오늘은 「너의 집」이라고 말씀하셨다. 저번날에는 「나와 너의 집」이라고 하시더니.

순간 깨달은 바, 그때에는 예수님께서 내게 가르쳐주시고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장소가 옮겨져 천국 집으로 돌아왔다.에서 보니 이층 담이 저번보다 더 올라가 있었다.

한 층의 절반 정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할머니에겐 죄송한 노릇이지만 천국에 오면 지옥에서의 아픔이 금새 잊어지는 것이었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순종을 내가 기뻐한다. 내가 하라는대로 하는 너로 인해 이 상급집이 이처럼 신속히 높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집을 「상급집」이라고 표현하셨다! 놀라서 바라보는 내게 예수님은 미소지으며 말씀하셨다.

“너의 새 집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느니라.

이 집은 내가 보너스로 네게 주는 상급의 집이며 나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는 상급의 집이다.”

어느새 지옥의 생각을 잊어버린 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저으기 안심하시는 것을 느꼈다.

“왜 전에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어요?” “너에게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을 주기 위해서였지.

그래야 네가 분발하여 더 열심히 일할 것이 아니냐?”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재기발랄하심이 퍽이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집안에 들어가 소파에 저번 날처럼 앉았다. 예수님은 3인용, 나는 2인용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에 과일이 이쁜 바구니에 담겨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는 과일을 먹지 않는 체질이었음에도 천국에서는 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아주 많이 먹는 것이었다.

먹으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많이 먹으며 화장실은 어떡하지?’

그런 나를 미소로 바라보시며 예수님께서 알려주셨다.

“천국에서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기분나쁠 정도로 부르지 않단다. 늘 가득찬 기분좋은 포만감이 있을 뿐이지.”

내 속생각을 아시고 화장실은 갈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데 책이 없네?’ “예수님, 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네가 책을 많이 읽고 쓰면 서재가 생긴단다. 지금 네겐 성경뿐이구나.”

침대 곁에 성경이 놓여 있었다. 침대로 달려가 성경을 안고 엎어지듯 침대로 누우며 밝게 외쳤다.

“성경 하나면 족해요!”예수님께서 내게로 다가오시며 웃으셨다.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저는 책을 언제 쓰게 되나요?”

“조만간 내가 너에게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고 이를 것이다.” “제목이랑 그런 것두요?” “그럼 당근(당연하지).”

헉! 예수님께서 「당근」이라는 표현을 쓰시다니! 「당근」이란 요즘 세대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인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짖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눈높이 차원에서 유머를 즐기는 내게 맞추어 예수님께서 대꾸하신 것이었다.너무 재미있어서 침대를 딩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예수님도 그런 나를 재미있어 하시며 내려다보시고 같이 깔깔대고 웃으셨다.

예수님의 웃음소리는 너무 맑고 아름답고 청명하다.

육체처럼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아니지만 내 영혼이 그것을 들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귀를 열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단어를 쓰셨다는 것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또 어떤 분들은 감히..라고 여기며 분개하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쓰셨다는 것을 몇몇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분들도 긍정의 수긍을 하셨다.

그리고 나 역시 천국에 데려가시기 전에도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나의 눈높이로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려주신 적이 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철장권세를 가지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지엄한 분이시기도 하시지만 그 자녀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기 원하시는 친구이기도 하신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5

 

“자, 이제 그만 가자꾸나.” 오늘은 더 있겠다고 조르지 않았다. 이렇게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 싶어서였다.

즉시 다시 내 침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였고 예수님은 내 침대 머리맡에 서 계셨다.

예수님께서 내 이마에 안수하시고 이마와 양볼에 입 맞추신 후 사라지셨다.

그러면서 내 눈이 스르르 떠지며 몸이 부드러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다시 떠올라서였다.

나는 모로 누워 계속 흐느끼며 울다가 또 소리내어 울다가 하며 울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금 예수님의 강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자..이제 그만 울거라..어서 일어나 기록해야지...!”

그러면서 저절로 울음이 멈추었고 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 ***************** ******

 

그 일이 있은지 일 년 후의 일이다.

 

나는 주님께 실낱같은 죄악까지 떠오르게 해달라고 회개의 영을 간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옥에 계신 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지적하셨다.네가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음성을 들으면서 눈물로 펑펑 울며 회개했다.

나는 할머니가 지옥에 계신 것이 마음으로 안타깝기는 해도 그것이 나의 죄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실낱같은 죄악을 찾자마자 떠올려 주시는 것이다.

나는 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어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내가 기독교계통 초등학교를 다닌 것 뿐인데?

그런데 주님께서 나의 죄에 해당한다고 제시하신 성경 본문이 있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로마서 1:21

 

믿음은 없었지만 학교에 가면 식사 기도도 하고 예배에 참석도 하고 해야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댁에 그렇게 자주 가서 뵈면서도 단 한 번도 교회 가시라고, 예수 믿으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었다.

내가 성령충만 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주변에 교회 가라고, 예수 믿으라고 말 한 마디 하는 것이 상급이요, 안 하는 것은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2

 

이것은 명령이다. 하면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고의 차원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나는 이것을 놓쳤으므로 할머니에 대해 통회자복해야 했다.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죄악을 우리가 품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죄, 특히 친족에게 전하지 않은 죄는 큰 죄악이다.

그 부분에 대해 회개해야 하고 그런 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어서 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믿지 않고 돌아가신 친척분이 계시다면, 그 분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회개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 그 부분에 관해 반드시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개하고 나니 할머니 생각을 할 때 마음은 아픈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났던 것이 내가 아닌 내 안의 성령님께서 나의 회개치 않은 탄식으로 인한 눈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1월 29일 오전

 

부끄러운 구원ㆍ선악과ㆍ이단 경고

 

아침에 집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기도하다가 박수치다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온 몸에 맥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박수가 쳐지질 않았다.

힘을 다해 손을 들어봐도 손이 올라가지질 않는 것이었다. 입술조차 벌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왠지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예수님이 오실 때처럼 강한 진동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왠지 다니엘이 떠오르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다니엘 10:8-9

 

얼마 안 있어 예수님께서 오셨다. 늘 그러하듯이 침대 머리맡에 서셔서 미소로 내 이마에 안수하셨다.

나는 며칠 만에 만나는 예수님인지라, 뵙지 않은 며칠 동안 상사병처럼 그리워했던 터라 너무 기쁘고 감격하여 주님의 허리를 꼭 껴안았습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주님..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너의 그 마음을 알고 내가 왔잖니.”

예수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나와 함께 가자. 네게 보여줄 곳이 있다.”

나는 간만에 만난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 두 팔로 예수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다시금 말씀하셨다.

“자, 가자꾸나.” “주님, 천국도 지옥도 보고싶지 않아요. 전 이렇게 주님하고만 있고 싶어요.”

“그래..네 마음 안다. 하지만 어서 가서 보고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잖니? 자, 어서~.”

예수님께서 나를 재촉하셨고 천국으로 나를 올려 가셨다.

나의 행동들이 비디오테잎이 빨리 진행되듯이 착착 진행되었다.

흰 건물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 큰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면류관을 썼다.오늘도 흰 옷을 입고 싶어서 흰 옷을 입었다.

예수님도 아름답고 빛나는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큰 성전으로 함께 나아가 예수님께서 나를 성전에 두시고 계단 위 보좌에 앉으셨다.

만조백관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무리져 있었다.

나는 항상 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중앙 왼편에 그들과 마주한 위치에 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아직 내가 완전한 천국백성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내 딸을 위해서 기도해주어 고맙다.

내 딸이 연단을 받고 있고 계속 받을 것이나 너희의 기도로 잘 이길 것이다. 이후로도 계속 기도해 주기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경외심을 담아 “아멘!”하고 외쳤다. 나도 같은 모습으로 감사함을 아뢰고 있었다.

그들이 박수치며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합시다~” 찬양을 시작했고 모두 함께 박수치며 즐거워했다.

그들의 찬양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춤추며 찬양하고 있었다.

두 팔을 브이자로 높이 쳐들고 한 발을 중심으로 한 발로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즐겁게 찬양했다.

 

♬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나 구주 위해 살리라 내 기쁨 한량 없으리~ 내 갈 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이후 깨어 찾아보니 찬송가 351장이었다.

원래는 좀 느린 곡으로 알고 있는데 천국에서는 내가 그 찬양을 빠른 템포로 춤추며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즐겁게 박수를 쳐 주었다. 예수님께서도 함께 즐거워하심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찬송가곡의 높은 음에 맞춰 찬양을 잘 못하고 춤도 디스코 외에는 못 춘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생전 안 춰본 춤을 너무 멋지게 추면서 높은 음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춤과 찬양을 보시고 박수치며 기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목청이나 춤 솜씨에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앞에서 마음으로 영으로 찬양하고 춤추면 아름답게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주님 앞에 찬양 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 앞에 손을 들고 춤을 추나이다.

받으소서, 받으소서. 받으시고 기뻐하소서.

 

예수님께서 내게 추게 하셨던 그 춤은 이스라엘 춤이었다.

이후 예수 영화 가운데 가나 혼인잔치 장면에서 어떤 여자의 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천국에서 추었던 그 춤과 같은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소리내어 울었다.

내게 그것을 추게 하며 당신의 세상에서의 삶을 추억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천국에서 주님 앞에 춤추며 즐거워하던 시간이 다시 그러워서였다.

이후에도 주님은 몇 차례 내게 춤을 추게 하셨는데 그것 역시 그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이 세상을 향하여 계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듯 예수님도 세상을 향해 그러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루 속히 이 땅에 다시 오시고 싶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쁜 맘으로 단에서 내려오셔서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다.

보통은 이처럼 기쁘면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하늘을 날으셨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으셨다.

둘이 손을 잡고 황금길을 거닐었다. 전에 보던 길인지라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그 길 끝에서 보았던 야트막한 언덕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앉으셨다.

“네게 보여줄 곳이 저 곳이니라.”

예수님 곁에 앉아 언덕 오른 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천국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좀 허름해 보이는 작고 나지막한 집들이 줄지어 무리져 있었다.

마치 재개발 지역단지에 있는 연립주택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곳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빛이 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컴컴하지도 않은, 흐릿한 날씨 속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의아스럽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여지껏 내가 보아온 천국은 빛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들이었는데 그 곳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이 곳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곳이 네 엄마가 사는 곳이란다.” 헉..엄마가 저런 곳에...!

내가 본 나의 집과는 사뭇 달랐다. 놀라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엄마는 죽기 직전에 나를 영접했다. 그러므로 저런 곳에 살게 된 것이다.

저 곳에 살게 되면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천국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영원토록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늘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영원히 지내게 되는 것이다.”

 

아..!

예수님은 우리가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맘껏 주님을 찬양하며 활보하며 영원토록 밝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그것이 안타까와 오늘 나에게 이것을 보여주시는구나! 예수님의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되어져 왔다.

“그럼 저는 저 곳을 방문할 수 있나요?” “물론 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네가 가서 엄마를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나 엄마가 너의 집이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는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네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을 것이나 천국에 오게 되면 그런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천국에서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넘어 더 아름다운 관계, 즉 성도의 관계로서 영원히 지내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 엄마를 제약하거나 제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빛이 있는 곳에는 오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대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되면서 몹시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주님을 외면했다는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에 영원히 스스로 말과 행동에 제약을 하고 행동 반경조차 스스로 제한하여 다니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신 엄마도 바로 그런 케이스인 것이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과 함께 엄마를 만났을 때에도 미소만 지을 뿐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때에도 예수님께서 엄마를 만나게 하려고 부르셔서 그 자리에 오셨던 것이다, 본인의 의지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리고는 얼른 또 사라지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려 하셨다.

“자, 시간이 없다. 다른 곳을 가 보도록 하자.” “주님, 잠깐만요. 전 여기서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요.”

“여기서 이야기하지 말고 너희 집으로 가자. 그곳에 그네가 생겼느니라.”

나는 그네를 좋아하는데 그네가 생겼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뻤다. 상급집의 2층이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

내 입이 나도 모르게 함박만해졌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시면 내가 기뻐할 것을 아시고 데려오신 것이다.

“순종하는 너를 나는 기뻐한다. 너의 순종으로 집이 빨리 완공되어 가고 있음을 나는 기뻐한다.”

기쁜 마음으로 실내로 들어가 보았더니 책장이 있었는데 책은 몇 권이 없었다. 성경책과 두 세 권의 책이 꽃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책을 좋아해서 내가 책장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나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기쁨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 예수님께서 더 기쁜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 영혼이 구원될 때마다 내가 여기 책이 한 권씩 늘어나도록 해 주겠다.”

상 주시기 기뻐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책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줄 아시고 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는 것이다.

 

상급집 앞 풀밭에 2인용 그네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하고 귀여운 그네였다.

내가 집 쪽 그네에 앉고 예수님은 시냇가쪽 그네에 앉으셨다.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님, 성경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기도하라고 되어 있고 또 깨어있으라고 되어 있는데 깨어있다는 것이 정확히 뭔가요?” “깨어있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기도로 나를 찾을 것이며 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자는 말씀을 읽음으로써 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할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여 찾는 자를 만나줄 것이며 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자에게 나의 음성을 들려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주님, 어느 집사님 질문인데요, 성령받은 자가 어떻게 지옥을 갈 수가 있냐고 물었어요.

한번 성령 받으면 지옥과 영원히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고, 그렇게 배웠다고….”

“그래서 내가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깨어 있음은 균형잡힌 신앙을 요구한다.

기도만 하게 되면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며 영적교만에 이른다. 또한 말씀에만 치중하게 되면 지적교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양쪽을 골고루 함으로써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신앙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지적 교만에 빠지게 되면 이단에 속한 자가 되기 쉽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에 속한 자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성경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니라.”

나는 그네에 앉아 왔다갔다 하면서 예수님께 얼굴을 향하고 다시 물었다.

“주님,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한 게 있었어요.

왜 하나님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서 인간을 힘들게 하셨나요? 첨부터 안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예수님께서 왼 손은 그네를 잡고 오른 손으로 내 등을 어루만지시며 나를 바라보고 말씀하셨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바로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는 선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명하셨다, 생명나무의 과실만 먹으라고.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원하신 목적이다.

그래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영생하며 함께 동거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생명과를 먹는 자는 신성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영생에 이를 것이며 선악과를 먹는 자는 인성이 충만하여 사람의 아들이 되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다가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다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1-2

 

“선과 악을 함께 만드심은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선을 더욱 선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언제나 선과 악을 함께 두신다. 그것이 공존의 이유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언제든 선을 취할 수도 악을 취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격을 제공하시고 그들 스스로 선을 취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의 음성을 듣고 기꺼이 스스로 악을 취함으로써 저주를 받는 것이다.

잘 들어라, 생명과와 선악과는 에덴동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재 인간의 삶 속에 늘 함께 머문다.

성령충만한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어 어떤 상황에 이를 때에 생명과를 취할 것이며 선악과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함으로 그 삶 속에 천국을 소유하고 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인성이 충만한 자는 마치 자석처럼 악령에 이끌리어 선악과 열매를 먹고 그의 삶 속에 육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사단과의 영적 간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자라도 육체를 지닌 이상 에덴동산의 하와처럼 언제든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 유혹에 빠져 저주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 이유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사단의 유혹에 빠져 영적 간음을 함으로써 나를 저버리는 자가 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단은 생명과와 선악과를 만든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선악과 따먹기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짓게 만들고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며 급기야는 사망에 이르도록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너는 이것을 잘 기억하였다가 다 기록하도록 해라.“

 

나는 어느새 그네에서 내려앉아 예수님의 무릎에 손을 얹고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되어 고개를 들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주님, 전 참 잘 잊어먹어요. 외출하려고 차를 타려다가도 몇 번씩 집에 다시 들어오기 일쑤예요.

이 많은 것을 다 기억할까 걱정이예요. 기억력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며 물으셨다.

“네 기억력이 좋아질 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우러러 고백을 드렸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께서 내 머리 위로 사뿐히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지껏 예수님께서 무엇을 주실 때 내게 믿냐고 물으신 적이 없었다.그냥 “받으라, 임할지어다” 하셨고 그 말씀대로 내게 임했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께 나의 소원을 아뢰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처럼 묻고 계신 것이다.

내가 알게 된 바, 주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으실 때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함께 듣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고백은 사단의 훼방과 송사를 물리치는 방패가 된다.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간구에 속히 응답케 하는 촉진제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8:50

 

그런 후 예수님께서 그네에서 일어나셔서 말없이 나를 이끄셨다. 무언가를 보여주시려는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어디든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었으므로 이제는 어디 가시냐고 묻지않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나는 지옥에 이르렀다. 여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사람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몇 번 보아 익숙해진 탓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눈물도 나지 않았다.마음에 슬픔만 고여 있었다.

그것이 전에 내가 지옥에 도착해서 두려워할 때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내게 평안과 담대함을 주신 이후 생긴 마음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불구덩이를 지나 예전 가룟유닥 있던 그 감옥으로 갔다.예수님께서 그 곳의 누군가를 보여주셨다.

감방 속에 있는 한 영혼이 해골이 되어 창살 밖으로 뼈만 앙상한 팔을 내밀고 간절히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이단에 속한 자였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말씀을 왜곡되이 해석하며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는 자들이 그들의 지적교만으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베드로 후서 1:20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6

 

예수님께서 저에게 새 집을 보여주시겠다며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새 예루살렘 집 앞에 예수님과 내가 서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에 새 이름으로 된 문패가 달려 있었다.그 문패에는 천국말로 나의 새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다만 나의 새 이름이라는 지식만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일러 주셨다.

“그 천국말을 지금은 읽을 수 없으나 네가 이후 천국에 이를 때에는 읽을 수 있으리라.”

집안은 너무 화려했다.황홀하기 그지 없었다.상급집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게 화려했다.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집이었다.말하자면 새 집은 본 집이요, 상급집은 별장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예전에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도 그렇고 천국간증을 들을 때에도 그렇고 나는 보석에 대해 시큰둥했다.

돌 조각 같은 그것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된 것은, 천국의 보석과 세상의 보석은 족히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다만 색깔도 그렇고 보석도 그렇고 세상에서 이해할 다른 표현이 없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 뿐이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아름다움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곳, 그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출입문으로 들어서니 바로 눈 앞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영화에서 본 것같은 휘어진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니 곧바로 방들이 연달아 네 개가 있었다.

방들 앞으로 복도가 있고 난간이 있어서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본 것들을 그림 그려 설명해 보려고 했으니 포기했다.

내가 본 모습과 내가 그린 모습이 너무 차이가 나서 스스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한 천국은 평면에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왼쪽 첫째 방이 내 침실이었다.방의 왼편에 화려한 침대가 있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 쪽으로는 길다란 진열대가 있었다.

그 길다란 테이블 전체로 너무도 많은 보석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 진열대에서 보석을 하나 집으셨는데 진주목걸이 같았다. 그것은 내 목에 걸어주셨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내 목에 걸어주실 때 기쁨이 충만히 차 올랐다.

그리고 들어선 문 가장 안 쪽으로 바깥이 보이는 테라스가 있었다.테라스로 다가가 바깥을 내려다 보았다.

이태리식으로 보이는 둥근 반원형의 난간이었다.

말하자면 쿼바디스 영화에 네로 황제가 서서 군중에서 손을 흔들던 왕궁의 난간같은 곳 말이다.

테라스 바깥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다.푸르른 들판의 풀밭과 들판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보였다.

군데군데 화려한 싱글하우스(단독주택)들이 있었다.건물마다 3,4층 되어 보이는 집들이었다.

기쁨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 곁으로 다가와 함께 바깥경치를 구경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것들을 보고 기뻐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마음 뿌듯해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주님, 저의 풍부한 상상력이 이 글을 쓰게 한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청결한 마음이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천국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올 자가 없다.”

 

예수님께서 난간을 두손으로 짚으신 채 여전히 밖을 내다 보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이 좀 답답해 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7

 

나는 갑자기 나도 모르게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저도 물고기 보여주실 수 있어요?”

이 질문을 하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시다. 여태까지의 모든 대화를 인도하신 이도 성령님이시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의도적인 이끄심이다.

예수님께서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물으셨다. “보고싶니? 가자.”

주님께 이끌리어 이른 곳은 강가였다.

오른 편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바베큐판 같은 것이 었고 나무로 만든 것 같은 식탁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강물에 손을 넣으시니 신기하게도 물고기가 금방 한 마리 예수님 손에 들려 올라왔다.

황금색의 납작한 생선이었는데 가재미처럼 생겼다.

“주님, 이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예수님께서 그 이름을 말씀하시는데 천국말로 뭐라뭐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게는 마치 옹알옹알 하시는 것처럼 들렸다.

“네?” “옹알옹알..” “네?? “옹알옹알...” “네에??”

나는 귀를 예수님께 더 바짝 대고 되묻고 되묻고 했다. 그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고개를 젖히고 막 웃으셨다.

나의 알 수 없다는 표정이 우스우셨나 보다. 나도 마음이 즐거워지면서 같이 막 따라 웃었다.

나의 육체도 지상에서 함께 즐겁게 웃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냥 「황금물고기」라고 하라. 이후 네가 천국에 오게 되면 그 이름을 일컬으리라.”

..내가 지금은 천국백성이 아니라 천국말을 모르는 거구나.. 그제야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내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굳이 깊이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말씀이든 어떤 영적세계의 일이든 다만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믿음의 분량만큼만 알고 받아들이기.

나머지는 깨달음을 주실 때까지 그냥 넘어가기.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2:3

 

새 집 앞에 있는 문패의 이름도 그렇고 황금물고기도 그렇고 모두가 계획가운데 보여주신 것들이었다.

보이지만 해석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풀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이단에 빠질 것을 경고하며 현장학습으로 가르쳐주신 예수님!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글쎄 황송하게도 친히 물고기를 구워 주셨다. 나는 고개를 빼고 예수님께서 물고기 굽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불판에 불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물고기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것이었다.

오픈되어 있는 마이크로오븐(한국식 표현은 전자렌지)이랄지. 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정말이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잘 구워진 물고기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아 주셨다.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막 구웠으니 뜨거워야 할텐데 손으로 먹는데도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마주 앉아 쳐다보시다가 물고기를 조금 떼어 내 입에 넣어주셨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제자들을 먹이시던 일을 추억하며 이 일을 즐기신 것이리라.

스승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조반을 먹이시며 위로하시던 부활의 주님..!

제자들이 잡아온 생선을 가져오기 전에 이미 육지의 숯불에는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생선과 떡이 있었다.

그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할 것을 아시고 미리 준비해두신 사랑의 주님...!

그 주님이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주님이 되신다. 할렐루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요한복음 21:12-13

 

예수님께서 강에서 물을 떠서 내게 마시우시며 말씀하셨다. “마셔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그 단맛의 물을 맛있게 받아 마셨다. 실제로 지상에 있던 나의 육체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7-38

 

생각해보니 천국의 강의 물은 어떤 물이든 마시면 힘이 나고 기력이 회복되고 목마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특별한 연못만이 목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죄사함의 은총을 입는 물이다.

내가 물과 생선을 맛있게 먹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이제 가자꾸나.”

지상의 침대로 돌아와 예수님께서 침대 곁에 서셔서 이마에 안수하셨다. “오늘 하루 기쁨과 평강이 임할지어다.”

그리고는 이마에 입맞추고 떠나가셨다.

스르르 눈이 떠지고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일어나 기록하고 치카치카 이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강으로...

 

 

여섯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3일 새벽

 

비판하는 자들

 

침대에 누워 있는데..잠이 설핏 들려고 한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잠들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 때 사람들은 흔히 비몽사몽간이라고들 표현하는 걸 보았다.아마 내가 그런 상태였나보다.

갑자기 온 몸이 뜨거워 오기 시작했다.덮고 있던 이불을 다 걷어찼다.등허리가 뜨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직감적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나의 모습은 어린아이가 되어 예수님께 안겨 좋아하고 있었다.예수님과 내가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곳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나고 보면 언제든지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알려주실 일에 대해 감동을 주시고 질문하도록 인도하셨다.

내 개인적인 바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도 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아버지에 관해 묻고 싶은데 여지껏 단 한 번도 질문이 되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과 이 책에 관하여 나눈 대화들이다.

“내가 너의 손을 빌어 쓰는 것이니라. 내가 작가이며 디자이너이고 편집자이며 판매자이다.

내가 너를 통하여 세계 곳곳에 있는 나의 자녀들에게 읽게 할 것이다."

나는 단순히 기록자에 불과함을 새삼 확인시켜 주셨다.

“주님, 이 책이 나오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신학적 이유를 대며 반박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부분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내가 신이다.

신학이란 신을 아는 학문임과 동시에 신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학문이다.

신을 먼저 알고 신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순서이니라.

그런데 저들이 나를 알 생각을 않고 나에 대해 분석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게 됨으로써 지적교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종들이 나를 아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길 원하고 천국을 아는 일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길 원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않는 자는 안 들은 자보다 더욱 악하다. 저는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

 

한참을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예수님께서 일어나셨다.

“자, 이제 자거라. 네가 피곤하구나.”

“주님~!

제가 천국갔다 온 거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 오늘도 천국가서 보고 얘기해 줘야 되요. 보여주세요오~~!”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졸랐다. 그 당시 나는 인터넷 블로그에 이 기록을 매번 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씨익 웃으셨다.

그리고는 귀여운 듯 내 볼을 살짝 꼬집으시면서 “욕심쟁이~.”라고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너는 신앙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런 욕심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욕심이 너를 쓰게 하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자, 가자.” 주님께서 저를 한 팔에 안고 위로 슝! 올라가셨다.

그 순간 지상의 내 육체에 전기충격같은 성령님의 강타하심이 크게 한 번 있었다.

이제는 이전처럼 오랜 시간 요동치지 않고 너무 쉽게 가는 것이 신기했다. 쉬운 말로 길이 닦인 것이라고 할까.

자..이제 천국을 보는구나..싶은 마음에 감격이 찾아왔다.

간만에 보게 되는 천국인지라 또 새로운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헌데..천국이 왜 이래?? 눈앞이 캄캄했다. 으응? 천국은 환한게 정상인데??

순서대로 하자면 지금 내 눈 앞에 크고 흰 성전건물이 있어야 마땅한데??

 

그 순간 내 눈 앞에 불길이 보였다.불길이 눈 앞에서 가까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저번 날 본 불구덩이가 클로즈업되어 내게 보이는 듯 했다.

아고..지옥이구낫! 예수님께서 평소처럼 천국을 거쳐서가 아니라 지옥으로 곧장 데려오신 것이다.

그 다음 어떤 장면이 보였다. 불구덩이인지 감방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사람이 보였다.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려왔다.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고 비판한 자니라.”

그의 눈과 코와 귀와 입, 모든 구멍에서 손가락만한 가는 실뱀들이 하염없이 끊임없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너무 고통스러워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내 눈앞에 그의 생전에 대한 환상이 보였다. 어두운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고 웅크린 채 공부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굉장히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12:12

 

예수님은 무엇 하나 그저 보여주시거나 하는 법이 없으시다.

지금 보여주신 지옥의 모습은 아까 나누었던 대화 내용에 관련하여 보여주시는 시청각 자료인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조른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 남자가 가는 실뱀들에게 고통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 괴로워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예수님께 조르기 시작했다.

“주님~! 더 보고싶지 않아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어서 저를 천국으로 데려다 주세요, 네?”

천국을 생각하자니 상급집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데리고 천국 상급집으로 가셨다.

아..2층이 완공되어 있었다! 집앞에 여전히 흐르는 시냇물과 푸르른 풀밭 그리고 그네... 모두 다 잘 있었다.^^

그 풀밭을 가로질러 흰 토끼 한 마리가 강종강졸 뛰어가다가 딱 멈춰서서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더니, ‘응~ 이 집 주인이군~’ 알았다는 표정을 하며 다시 강종거리고 뛰어 사라졌다.

 

“주님, 저 실내에 들어가 봐도 되요?” “물론.” 재빨리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화려한 새 예루살렘 집과는 달리 이곳은 차분하고 아담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완공된 2층으로 올라가 보고싶어 계단을 찾았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다. 내가 갸우뚱거리며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계단이 없네요?” “내가 네게 그보다 더한 것도 보리라고 한 것 기억나느냐?”

예수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순간 저번 날 새 예루살렘 거리에서 본 작은 폭포수가 오르락 내리락 할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네가 이보다 더한 것도 보리라.” 그래도 여전히 의아스러워서 또 물었다.

“하지만 새 예루살렘 집에는 휘어진 계단이 있었잖아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저번 날처럼 또 위트있는 답변을 하셨다.

“내 맘이지!”

이 땅의 사람들이 고상하게 표현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처럼 멋지게 한 마디로 표현하시는 멋지신 우리 주님!

예수님과 웃다가 스르르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0분.

가만보면 평소에는 안 그러시다가도 예수님께서는 상급집에 오시면 항상 쾌활하시고 유머구사도 잘 하셨다.

이제야 그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몇 번을 상급집에 갔을 때도 못 느꼈는데 이제야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내가 쌓은 상급으로 지어지는 나의 상급집. 보너스로 내게 주어지는 상급집.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상급은 시간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쌓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나의 마음으로 인해 쌓여가는 천국 상급에 흐뭇하고 기쁘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인가? 주님께서 주셔서 생기는 마음인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믿음도 순종도 주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그 마음으로 상급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의 상급은 주님으로 인해 주님으로 말미암아 쌓이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주시고는 또 그것을 보시며 기뻐하시는 것이다.

나는 몰랐다. 나는 정말이지 이토록이나 나를 향해 기뻐하시는 줄 정말 몰랐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며 이처럼 기뻐하시는 주님.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시며 또한 슬퍼하시는 주님.

그러므로 자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며 함께 기뻐하시려고 주고 또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마음..

주님은 24시간 우리를 축복하고 싶어하시는 분이시다.

 

일곱 번째 데려가심/ 2007 2 3


나눔의 축복 Ⅰ

 

절친하게 지내던 집사님 내외분이 집에 오셨다.

나의 개인적인 일을 도와주시러 차를 몰고 두 시간 먼 길을 오신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 분들의 도움으로 속히 일이 끝나자 모두가 기도하고픈 마음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셋이서 손을 맞잡고 기도하다가 여집사님과 둘이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내 안의 성령께서 성령충만을 달라고 친히 간구하심을 느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그만 그 자리에 스르르 눕고 말았다.

몸에 강한 충격적인 진동이 한 번 있은 후 나는 천국으로 인도되어 예수님을 뵐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무척 흐뭇해 하시는 표정이셨다. 그리고는 나를 안고 등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잘 했다, 잘 하고 있어.” 처음에 그 말씀을 들을 때 의아스런 마음이 들었다. 뭘 잘 하고 있다는 말씀일까?

 

집사님 내외분과는 피차 알고 있고 호감을 가지 있었지만 서로 교제를 하던 분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어떤 일을 계기로 자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그러면서 서로 은혜도 나누고 위하여 기도도 하고 했던 것이다. 당시 주님께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거룩한 부담을 자꾸 주셨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중보기도하거나 아니면 만나거나 하며 함께 기도했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이처럼 인도하셔서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는 또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일이었다. 주님께 영광!

 

예수님께 남자 집사님과 아까 나눈 이야기를 해드렸다. “주님, L집사님이 천국 가 봤으면 좋겠대요.”

예수님께서 하하 하고 웃으시며 각자의 사명이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함께 웃음이 나왔는데 실제 지상의 내 육체도 웃는 것이었다.

그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여자 집사님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도하라고 하라. 기도하면 내가 믿음을 더해줄 것이요, 사랑하면 사랑을 더해줄 것이다.”

그 때였다.

집사님의 손이 내 손 위에 닿더니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희한하게도 손이 내게 닿자마자 내가 깨어나게 된 것이다. 나는 힘없이 스르르 일어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입벌려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 기운이 없었다. 다시 눕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들었다.

누군가가 성령에 사로잡혀 위로부터 오는 은혜 즉, 기름부음을 받고 있을 때 가급적이면 주변 사람들은 그의 육체를 건드리거나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조용한 주변환경을 만들고 그를 위해 중보하되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단, 안수자는 예외인데 안수자와 기름부음 받은 자와는 영적인 교류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한 영이시다.성결한 영이시다.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영이시다.

그 거룩한 영이신 주님께서 자녀를 강권적으로 사로잡아 무언가 하시려 할 때, 그 어떤 것도 방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 날 그 해프닝으로 인해 우리는 또 하나 영적 세계의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여덟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3일 낮

 

나눔의 축복 Ⅱ

 

나는 자리에 다시 누웠다. 이번에는 나를 건드리지 말아줄 것을 미리 부탁했다.

자리에 눕고 얼마 안 있어 곧 주님은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그 때 내 눈 앞에 처음 보인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 세 번째 보는 아브라함이 반가와서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나도 모르게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땅에서는 “아브라함, 아브라함” 이렇게 부르는데 천국에서는 모두가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나를 반가이 맞아주면서 안고 칭찬해 주었다.

 “딸아, 참 잘 했다.

네가 저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달라고 구해서 내가 전에 약속한대로 주도록 했단다.  자, 함께 들어가자.”

그리고는 희고 큰 건물, 성전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큰 방으로 들어가 핑크색 드레스와 면류관을 썼다.

예수님께서도 어느새 빛나는 옷과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마치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하는 것처럼 큰 방에서 성전으로 나와 내 손을 잡고 보좌 쪽으로 걸어가시는 것이었다.오른쪽에 있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경외의 마음으로 허리와 고개를 숙여 경배드렸다. 예수님께서는 보좌에 오르시고 나는 보좌 가까운 쪽에 혼자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처음 천국에 데려오셨을 때 내가 서 있던 위치는 성전 입구문 쪽이었다.

그 다음 춤을 출 때에는 성전 중앙 정도의 위치였다. 그리고 오늘은 보좌와 아주 가까운 쪽에 서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나의 영혼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채우시고 그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천국에서의 내 몸이 주님께로 가까이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께 가까울수록 내 몸이 보좌에 가까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상에서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앞자리로 가고 싶어지는 것, 느끼신 분 많을 것이다.

아무튼 그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거기 모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기도로 내 딸이 잘하고 있다. 고맙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로 인해 무척 마음이 즐거우신 듯 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어린 양 예수를 영원무궁히 찬양할지어다~

 

천국에 올 때마다 성전에서 이들과 만나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들의 확실한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갈 때 마다 항상 그 자리에 웅성웅성 서 있는 그들에 대해 나 혼자 궁금해 했다.

‘대체 그 분들 job(직업)이 뭘까?

대체 뭐하는 분들인데 예수님께서 기도를 부탁하시기도 하시고 저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거지?

예수님의 중보기도팀인가? 특별기도팀인가?’

그들에 대해 묻는 것이 아직 허락되지 않았나보다. 이미 말한대로 천국에서는 질문 또한 주님께서 감동주셔야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알게 하시리라 믿는다.

그들의 찬양이 끝나고 나서 저번처럼 나의 화답송이 시작되었다. 저번 날과는 다른 춤이었다.

나는 도무지 춤출 생각도 안했는데 그처럼 춤추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치마 양쪽 끝을 잡고 왼쪽으로 한 번 오른 발을 내밀었다가 또 오른쪽으로 한 번 왼 발을 내미는 그런 춤을 내가 추고 있었다.

이 춤 역시 처음 춰보는 춤이건만 천국에서는 내가 기가 막히게 멋있게 추는 것이었다.

그 춤 역시 나중에 알고 보니 이스라엘 춤이었다. 춤을 추면서 내가 찬양하고 있었다.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예수님이 기쁘고 대견한 맘으로 나를 굽어보시며 즐거워하고 계셨다. 자녀의 재롱을 보시며 기뻐하시는 주님!

내 춤과 찬양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단에서 내려오셔서 나의 손을 이끄시어 상급집으로 데려가셨다.

내 마음에 2층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느새 내 몸이 2층에 있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을 만난 사건이 떠올랐다. 천국에서는 시공을 초월하는구나..!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

 

2층은 휴식공간처럼 보였다. 쉬면서 책을 볼 수 있는 긴 의자가 있었고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보였다.

예수님께서 2층반 내 곁에 서 계셨는데 아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나도 예수님께서 내려다보시는 방향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 놀랍게도 지상에 있는 나와 집사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 거실이었고 집사님 두 분이 기도 중이었다.

나는 그 곁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그대로 쪼꼬맣게 축소되어 보이는 것이었다.

너무 희한하고 신기했다.

그때 남자 집사님에 대해 다시 묻고픈 감동이 들었다. “주님, L집사님이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어요?”

“어린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유스그룹(Youth Group) 청소년들을 지칭하실 때 어린 사역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였다.남자 집사님이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막 웃으셨다.

나도 덩달아 같이 웃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그렇게 한동안 웃은 것 같았다.

나중에 깨어 집사님께 물어보았다. “집사님이 기도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마음에 합하셨는지 막 웃으셨어요.

무슨 기도 중이셨는지 아시나요?” “유스그룹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이었어요. 며칠 후에 있을 행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 내가 막 웃더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그 기도를 집사님이 하시니 주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것이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알려주시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많은 말을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다서 1:20

 

“주님, 성령으로 기도하기를 소원합니다.

저의 모든 간구를 아시는 주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님께서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리도록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있는 집사님들을 천국에서 내려다 보다가 예수님께 부탁드렸다.

“주님, 기도하는 저들에게 기름부어 주시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 내게 답하시지 않으시고 곧장 옆에서 예수님을 수종들고 있는 천사(그 직전까지 못 봤는데 언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에게 기름부을 것을 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신 것이었다! 주님께서 미리 그들을 축복하시려고 천사를 준비시켜 두신 것이다.

그러시고는 그들을 위한 부탁을 드리게끔 하시고는 곧장 천사를 통해 행하신 것이다.

그것도 얼마나 급하셨으면 답도 안하시고 즉시 행하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간절히 복주길 원하셨으면...!

 

천사가 둥근 단지같은 병을 들었다. 그린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빌 기름같은 그린색이었다.

주먹만한 병에 기름이 아래로 우리 명을 향해서 부어져 내렸다.

천사가 그걸 붓는 보면서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 박수를 치면서 주님께 감사드렸다.

기름이 부어지자 지상의 육체와 집사님이 뜨겁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을 현재 하지않은 상태였는데 그들에게 그처럼 역사하는 것이로서는 놀랍기만 했다.

지상의 육체를 보고 있자니, 잠자듯 있던 육체가 반응하면서 방언이 세게 나오고 누운 채로 진동이 양팔에 오고 그러는 것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영육간의 축복을 미리 예비해두고 계시다.

주님은 본인이 혼자 기도해서 그 축복을 받는 것 보다 중보의 기도를 통해 양 쪽 모두에게 동일하게 축복이 임하는 것을 원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타인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중보기도는 일석 몇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서는 보다 많은 자녀들을 축복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서 중보하면 나도 건강해지고, 누군가의 영혼을 위해 중보하면 내 영혼도 잘되고, 누군가의 물질축복을 위해 기도하면 나도 더불어 부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한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 등을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내려가야지?”

내려가고 싶지 않아서, 예수님과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히잉~”하며 칭얼댔다.

조르고 싶었지만 지상에서 기다리실 집사님들을 생각하니 하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또 만나 주실거죠?” “그러엄~.”

헤어지기 싫은 연인이 헤어지는 것처럼 예수님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드렸다.그리고는 눈이 다시 떠지며 지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기도 중인 집사님들을 보면서 지금의 일들을 기록해두려고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노트에 날짜를 적고 기록하려는데 또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눈이 다시 감겼다. 이게 뭔 일이래? 하루 세 번씩이나?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의자에 앉은 내 앞으로 오셔서는 내 머리를 품에 안아 주셨다.

예수님의 사랑이 한껏 느껴져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셨다.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

너무나 감사했다. 그 때 집사님들 생각이 또 떠올랐다.

주님, 집사님께도 축복해주세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각각의 머리에 양팔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축복하노라….”

그리고는 앞에서 주님이 저와 마주 상태에서 점점 조그맣게 멀어지시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늘 내가 그분들 덕을 톡톡히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들을 축복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시려고 분들 마음에 돕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어, 다시 말해 축복할 명분을 주시고 맘껏 축복하신 것이다.

마음과 시간과 물질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나눌 때 주님은 무척이나 기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과 나눌 때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과 은사를 나누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는 나눔을 명분으로 우리를 맘껏 축복하시는 것이다. 아멘 할렐루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로마서 1:11-12

 

아홉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7일 새벽

 

믿음으로 가는 나라

 

간밤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든 가운데 코를 골고 있는 내 소리가 내 귀에 들리더니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져 오는 것이었다.

물론 실내는 어둑어둑했다. 크고 강렬한 빛이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고 계신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자, 가자.”   나는 오신 예수님을 향해 빙그레 미소지었다.

굳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 푸근함, 그것은 마치 오래된 부부 사이에 흐르는 신뢰감같은 감정이라고 할까?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더 하셨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거란다.”

예전처럼 진동이 오거나 깊은 잠에 빠지도록 하시려나 싶어서 모로 누워있던 자세를 바로하고 누웠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응? 주님이 왜 그러시지?  가자고 하셨으면 저를 데리고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혼자 어떻게 가지?  앉아서 뜨겁게 기도를 해볼까?’

혼자서 누운 채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방금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거란다.”  아 맞다, 믿음!

주님께서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는 또 그 믿음을 주님께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나는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렸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님이 계신 것과 천국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 순간 어느 새 내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천국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예전처럼 천사를 좌우에 거느리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두 팔 벌려 반겨주셨다.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막 달려가서 포옥 안겼다. 예수님께서 허리숙여 나를 꼭 안아주시고 등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수고했다. 믿음으로 잘 왔구나.”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온 것이니 내가 감사해야 할 터인데 늘 나는 받기만 하고 늘 칭찬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으시는 것이었다.또한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의아해져서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오늘은 어디 안 데리고 가요?” “천국 어디든 네 믿음으로 갈 수 있단다. 자, 가거라.”

어느새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려왔다. 머리 속에 여기저기 다니던 곳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나는 갈 수가 없었다. 생각만 나지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눈이 떠졌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주님께서 왜 내게 이렇게 하신 것일까? 왜 나는 여기저기 생각만 날 뿐,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던 걸까?

 

내게 주신 깨달음은 이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천국은 그 어느 것으로도가 아닌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곳임을 다시금 알리기 원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믿음을 고백할 수 없고, 천국에도 이를 수가 없다.

그 은혜로 나는 좀 아까 믿음의 고백을 하고 천국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주님께서 이끄시지 않으면, 허락지 않으시면 제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믿음은 도를 닦듯이 수양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베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선물인 것이다.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2

 

어느 누구도 믿음이 있다고 자랑할 수 없다.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드리는 겸손을 지녀야 한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우리 인생의 끝날까지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은혜로만 우리가 천국에 이를 수 있고, 그 은혜로만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 찬송가에도 천국은 돈으로도 못가고 맘 착해도 못 간다고 했다.

거듭나면 가는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바로 천국, 하나님 나라라고 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 천국. 막연한 믿음이 아닌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입술로만이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부터 믿어져야 한다.

사역을 하다보면 의외로 십여 년 교회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게다가 직분을 받고 습관적인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본인의 믿음에 대해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천국갈 믿음을 가졌는지 물어보면 우물쭈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퍽도 걱정스러운 경우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주님 자녀들은 모두 튼튼한 믿음의 고백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길 기도드린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

 

열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9일 낮

 

십자가의 공로

 

지난 3일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다. 인터넷은 고장나 불통이었다.

전화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전화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고 설사 온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내가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전화를 받지 못하도록 말씀하신 까닭이다.

그런데다가 간밤에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데려가실 듯이 나를 성령으로 사로잡아 뜨겁게 달구시고 진동하게 하시고는 천국에 데려가지 않으셨다. 평소에 천국을 데려가실 때처럼 모든 순서가 진행이 되고는 그 뿐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왠지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 혼자 적막강산에 떨구어진 듯한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왠지 주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자꾸만 들면서 슬퍼지는 것이었다.

말로 할 수 없이 외롭고 고독한 것이 어디 하소연할 곳도 생각나지 못하게 막으셨나 보다.

어느 곳도 연락하지 못하고 홀로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는 지난 3일간이었다.

3일째 되던 날, 친한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님께서 받도록 허락하셔서 통화하게 되었다.

대화 가운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그 가정에 가서 함께 기도할 때였다. 나도 모르게 손이 십자가 모양이 되어 한동안 있었더랬다.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집사님이 떠올려 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순간에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 생겼다.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사흘 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묵상하게 하시고 지금은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장사한지 사흘간” 음부에 계셨던 예수님을 느껴보게 하신 거였구나..!   그러면서 간밤의 사건도 납득이 갔다.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천국에 데려가시지 않으셨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마치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적인 버리심으로 인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3일간 천국에 이르지 못하신 것처럼 말이다.

 

주님께서 내게 느끼게 하셨던 버림받음의 느낌...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심을 느껴보도록 내게 베푸셨던 은총이었다.

그 사랑을 생각하자니 그저 죄송스럽고 황송하기 한량없어서 감사 감격에 하루종일을 예수님 액자를 끌어안고 울며 보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인터넷이 연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인터넷 채팅으로 아는 목사님과 집사님과 은혜를 나누게 되었다.

음부에 처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가라앉았던 내 심령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차츰 회복되어 갔다.

헤어질 즈음에 내가 기도드리는데 뜨거운 성령님의 임재가 있어서 심령이 마치 불붙는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의자 뒤로 몸을 뉘운 채로 주님의 기름부으심을 한껏 받고 있었다.

 

그 때였다.예수님께서 내 앞에 나타나셨다. 세마포를 입으신 예수님께서 내 얼굴 여기저기 마구 입을 맞추셨다.

나는 오래도록 정신없이 한참을 맑게 웃었다. 주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웃음을 맘껏 웃은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웃음이 있다.

주님이 주시는 웃음을 웃으면 심령에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내면의 치유가 된다.

지난 며칠간 내가 겪었던 마음쓰림에 대한 주님의 위로하심임을 알기에 주님께 감사드렸다.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

욥기 8:21

 

그리고는 금새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셨다.

저번 날처럼 비디오 테잎이 빨리 돌아가듯이 큰 성전과 큰 방에 들러 옷을 갈아 입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성전에, 예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셨다.

천국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므로 굳이 주님께서 나를 큰 방에 들러 옷을 갈아 입히시거나 할 필요없이 곧장 내 옷을 변형시키실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그 일을 반드시 짚고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 일은 내게 이미 익숙해졌으므로 신속하게 절차를 밟도록 이끄시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서는 못 쓴다”는 한국속담이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는 법이다.

주님께서 나를 비롯한 그 분 자녀들을 다루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두르는 것은 사람일 뿐, 주님은 결코 서두르시는 법이 없으시다.

아무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급하시더라도, 훈련되지 않은 자나 설익은 자를 선교의 일선에 내어 모시는 분이 아니시다.

어떤 부분에 대한 훈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훈련을 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나 이후 그 훈련을 제대로 파악하여 다 습득하고 나면 곧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 대해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이 다음에는 그 일을 안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오더라도 빨리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늘 있는 만조백관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번에는 다 함께 브이자로 손을 높이 쳐들고 한 목소리로 힘차게 찬양했다.

 

♬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찬양하리라 찬양하리라 찬양하리라~

 

나도 함께 브이자로 두 손을 들고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점프하듯 뛰며 성전을 둥글게 돌다가 덤블링을 하듯 이리저리 재주를 부리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하염없이 기쁨이 충만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삼 일간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마음을 겪어본 이후,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깊고 크게

내 영혼이 있는 힘껏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과 내가 마치 두 개의 종이비행기처럼 나란히 납작한 모습이 되어 하늘을 누볐다.

마치 예수님과 제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희한한 것은, 하늘을 날 때에도 옷이 아래로 처지지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아래로 새예루살렘 성들과 광활하게 펼쳐진 푸르른 들판, 낮은 언덕, 굽이굽이 보이는 시내와 강들 그리고 저의 상급집도 보였습니다. 그것들 또한 모두 저에게 허락된 것만 제가 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한동안 예수님과 날면서 가끔 주님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몸도 마음도 말 그대로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 상급집이 보이길래 속으로 ‘야~ 내 상급집이다아~!’ 하는데 곧 예수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함께 웃었다.

예수님께서 저번 날처럼 나의 상급집만 보아도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시는 것이다.

상급집을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자마자 예수님과 나는 상급집 옥상에 이르러 있었다.지붕이 없는 상급집, 편평한 그 옥상에 처음 올라가 보았다.왠지 실내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예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그 때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내 글에 댓글을 쓴 사람이었다. 안면도 친분도 없는 사람이었다.

뿐 아니라 그 때가 내 블로그에 처음 방문했던 분이었다.

그 자매가 댓글에 쓰기를, 이담에 천국가게 되면 자신에 대해 물어봐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지금 그 자매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을 보아도 질문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질문을 나로 하여금 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때 나는 그 주님의 답변을 그 분께 쪽지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그 이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 자매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자매는 원래 해외 포였었다.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서 만나는 기적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내가 자매의 마중을 하러 공항에 나갔었다..ㅎㅎ 뿐 아니라 그 자매와 함께 성경공부도 했었다.

전혀 알지 못하고 이후에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각각 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한 지역에서 만나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만남을 미리 정해둔 것이라고 믿는다.

참으로 주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우연이란 티끌만치도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함께 가자, 내가 한 곳을 보여주리라.” 순간 내 마음에 그곳이 지옥인 것을 알았으나 이전처럼 주저하지 않았다.

“주님, 저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이제 알아요. 음부에 처하신 그 아픔도 알아요.

주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제가 함께 갈께요.”

며칠간 겪어보게 하셨던 그 아픔을 다시금 느끼며 내가 말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을 때, 예수님께서 못자국난 발을 보여주셨다.

전에 지옥의 가룟유다의 옥 앞에서 못자국난 손을 보여주시면서 발은 보여주시지 않았었는데 오늘 드디어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못자국난 주님의 발등은 하얀 빛이 났다. 하얀 구멍처럼 보였다.

그 못자국난 발을 보며 나를 위해 죽으신 그 발 아래 엎드려 입맞추고 울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주님이 염려하시는 아픔의 눈물이 아닌 감사의 눈물이다.

그러므로 이제 마음에 단련시킨 후 예수님의 발등을 내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나를 일으키셨고 우리는 어느새 지옥에 와 있었다.

저번 날처럼 불구덩이 속의 사람들을 다시 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나는 얼마 안 되어 이처럼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약간 놀랐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우성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예수님께서 더할 수 없이 슬픈 목소리로, 울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이 이처럼 나를 등지고 이곳에 와 있구나….”

그 말씀을 듣는 나도 말로 할 수 없이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마귀가 뾰족한 창으로 끊임없이 여기저기 깊숙이 찔러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창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빼려 했다.

그러나 워낙 사람이 빽빽이 들어차 늘어서 있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창뿌리를 맞으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 곁에는 또 한 무더기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엎드러져 있었는데 채찍으로 그들의 등을 내려치고 있었다.

이들도 삐쩍 마른 사람들이었다. 채찍은 로마시대에 썼다는, 채찍 끝에 갈고리가 여러 개 달린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이런 채찍에 맞으셨다던데 그와 똑같은 채찍이었다.

채찍이 그들의 등에 떨어질 때마다 시뻘건 줄이 여러 줄 가면서 살이 긁어져 나왔다. 드린 사람들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계속 채찍을 맞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예수님께서 역시나 몹시 슬픈 어조로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저들은 나를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너는 가서 전하거라.

나를 다시는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내가 하도 우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

새예루살렘 거리였다.

이전에 본 작은 폭포수를 지나 오른쪽 길로 돌아서니 작은 좌판 같은 것이 아이스크림 집처럼 생긴 곳 앞에 펼쳐져 세워져 있었다. 두 개의 단으로 된 좌판이었는데 그 위에는 풍선같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너무 희한하기만 했다.

‘천국에 좌판이라니? 누가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닐테고?’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주님께서 미소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구든 거저 가진단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은 마음껏 가져갈 수 있다. 그러면 또 채워지느니라.”

오병이어와 같은 이치!쓰고 또 써도 자꾸만 생기는 곳.천국은 정말 좋은 곳이다.

핑크빛 풍선 하나를 들어 불었더니 하트 모양의 풍선이 되었다.

거기 있는 어떤 것이든 불면 하트 모양이 된다는 것이 절로 알아졌다.

하나를 불어 하늘위로 올리면서 나는 마구 박수치며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고 좋아했다.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런 일을 하는 데 대해 의아스러운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은 누구보다 나로 하여금 새삼스레 예수님께 놀라게 되는 일이다.

나의 철없고 어린아이같은 내면을 어른들은 몰라도 주님은 날 만드셨기에 너무 잘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에서 힘겨워 했던 나에게 이런 아동틱한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내가 좋아할 것을 아시고 말이다.

 

이왕 여기 왔으니 나의 집도 보았으면 싶었다.생각이 들자마자 예수님과 내가 집 앞에 서 있었다.

문 가운데 문패에는 여전히 아직 내가 읽지 못하는 천국말로 나의 새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신이 나서 문으로 들어가니 휘어진 멋진 계단이 여전히 멋지게 떡 버티고 있었다.

2층 맨 처음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그곳도 오른쪽 진열대 위의 보석들이 아무 탈 없이 수북히 잘 있었다..^^

하루 빨리 가서 그것들을 쓰며 영원히 지내면 참 좋으련만...쩝.

 

예수님께서 보석진열대 중간에서 왕관 하나를 꺼내셨다.그것을 내 머리에 씌워 주셨다.

그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가슴벅차 올랐다. 감격스러움에 말을 다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왕관을 씌워 주신 것도 감사 황공 감격 무지막지인데 나를 영화처럼 두 손으로 번쩍 안아서는 왼쪽에 있는 휘황찬란한 침대에 사뿐히 누이시는 것이었다!

좋아서 입을 헤~ 벌리고 마냥 웃고 있는 내게 예수님께서 미소지으신 채 다가오시어 내 곁에 걸터 앉으셨다.

그리고는 내 이마에 입맞추며 말씀하셨다.

“나의 왕비여..”아..내가 예수님의 왕비~!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니깐 왕비 맞구나~!

“예수님은 왕비도 많으셔~.예수님 욕심쟁이~!”

내가 웃으며 말하자 예수님께서도 웃으시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셨다.

“그래..나는 사랑의 욕심이 많단다.너는 가서 전하거라.나는 나의 왕비가 더욱 많아져서 천국이 가득차기를 원한다고..”

그 말씀 중에 예수님의 쓸쓸함이랄지 뭔지 모를 마음이 내 마음에 전달되어져 왔다.

자기 백성이 한 명이라도 더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

불러도 불러도 오지 않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무응답으로 인한 안타까우심..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주님의 간절함과 애절함...

 

예수님께서 아래를 내려다 보셨다.나도 따라 내려다 보았다.이전에 본 것처럼 세상이 보였다.

천국은 어디서든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세상인가 보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주님의 능력으로 어디서든 가능한 것이다.

아래 세상에는 내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 이제 내려가자꾸나.”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예수님께서 의자에 앉은 내 이마에 입맞추고 가시려는 데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다시 붙들었다.

“예수님, 잠깐만요.책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책 만들 때까지만 주님 만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못 만나나요?”

“책을 만든 이후에도 내가 지금처럼 너와 만나주리라.”

주님께서 내 뺨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내가 기뻐하며 또 물었다.

“예수님, 책 만드는 거 어떻게 해요? 좀 가르쳐 주시지요?” “너의 감동대로 하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은즉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편집과 디자인, 제목까지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네에...”

 

내가 너와 함께 있은즉 네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이 말씀에 대해 얼마나 오랜 시간 오해로 인한 시행착오를 범해 왔던 나인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는 하나, 나는 예수님을 리모콘 조정하듯 해온 사람임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추진하고 내가 결정하는 모든 일. 그리고 하나님께 그 일을 이루어 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린다.

그렇게 기도드리는 기도의 응답은 때로 내 바람대로 이루어질 때도 때론 전혀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서 난감해 한 적도 있었다.

그간의 숱한 실패를 거듭해오면서 이제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은, 나와 함께 계신 주님께 매사를 물으며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꼭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나 형통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여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성경에 말씀한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39:23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으로 치자면 그는 감옥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그곳에 주님께서 정하신 기간 동안 두셨었다.

나의 환경도 그와 같아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이제 안다.

비록 그것이 사람보기에 의아스럽게 보일지라도 말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따로 불러 회개의 기회를 주신 주님께서 내게도 그러하셨다.

주님을 리모콘 조정하는 죄를 범해온 내게 이제 만회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모든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이제 그 말씀을 하시고는 나에게서 떠나가시는데 보통 때는 순간적으로 사라지셨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으셨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양손을 들어 바이바이 흔들고 있었고, 예수님은 세마포 옷을 입으신 채 나를 향하여 서신 모습으로 점점 멀어지시면서 양손을 저처럼 바이바이 흔들며 조그맣게 사라져 가셨다.

지옥의 울부짖는 영혼들을 보시며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젖은 음성이 아직도 내 가슴깊이 맴돌고 있다.

 

“내가 십자기에 못박혀 죽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이 이처럼 나를 등지고 이곳에 와 있구나….”

 

그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주님의 그 아픔을 나에게도 느끼게 하신다. 그러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자리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 우리와 함께 빛나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기 원하신다.

그 자리에 함께 갔으면 참 좋겠다.

그곳에서 주님 얼굴을 환히 뵈옵고 그 사랑을 맘껏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원히 모두 함께 살았으면 참 좋겠다.

 

십자가의 공로 Ⅱ/ 2007년 12월 3일

 

천국에서 만난 그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란다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천국에 없을 것이라 여긴 사람이 있어서 놀라고, 천국에 있으리라 여겼던 사람이 없어서 놀라고, 세 번째로 자신이 천국에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그저 그런가부다..했던 것이, 막상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셔서 깨닫게 하신 후에야 그 말의 참 의미를 알면서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누가 천국에 있다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사건 하나를 주님께서 겪게 해주셨다.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2007년 11월 말, 뉴욕의 L자매집에서 일주일간 묵으면서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L자매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랑스런 지체였다.

함께 식탁에 앉아 천국과 지옥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L자매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거라고 했죠?

아..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을 안 믿었었는데 그럼 지옥에 계시겠네요…흑!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임종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네요….

목사님, 제가 열심히 기도드리면 지옥에 계신 저희 아버지가 천국으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요?”

에구..대답하기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말해야 했다.

“호흡이 끊어지면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살아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야 천국갈 수가 있거든요.

이미 지옥에 간 경우는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성경에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알 수가 있잖아요.”

안타까와 하고 있는 자매를 보며 어쩌지 못하는 일인지라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을 심령에 느꼈다.

기도하고 있던 중도 아니었는지라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웠지만 주님께서 예전에도 이런 일을 종종 하셨던 터인지라 순종의 마음을 주시길래 자매에게 말했다.

 

“음..주님께서 저를 천국에 데려가시려나봐요. 곁에서 기도해주세요.”

 

자매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이끌려 갔다.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만나게 하신 사람들이 있었다.

황금길 위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손을 잡고 나란히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미소띈 얼굴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의아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L의 부모들이다.”

미소만 띄고 말씀 한 마디 안 하시는 그 아버지가 L자매의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

보통 저의 엄마경우에는 속으로라도 말을 하고 나랑 의사소통이 되었었는데 이 분은 아예 속 생각조차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속으로도 전혀 아무 말씀을 않고 있음을 알게 해주셨다.

나는 무척이나 놀라고 의아스러워서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주님을 믿지 않았는데 어떻게 천국에 있을 수가 있죠??”

“저가 혼수상태에 있을 때 내가 그를 만나 믿게 하여 데려온 것이다.”

아…그렇구나, 그렇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버지께서 주신 자녀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으신다고 하시더니 그 막바지에서조차 주님께서 그 분에게 찾아가셔서 전도하시고 천국으로 이끌어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보다도 더 막바지에 주님을 영접하신 분이라 그처럼 말 한 마디할 엄두조차 안내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야 깨닫게 하신 것이 또 있다.

나의 엄마 또한 오랫 동안 혼수상태에 계셨었는데 그 때 주님께서 나의 서원기도를 들으시고 혼수상태에 있는 엄마에게 찾아가셔서 믿음을 주시고 천국으로 데려가셨던 것임을!

 

손을 맞잡고 있던 자매의 어머니는 한복차림에 머리를 뒤로 올리고 있었다.

영으로조차 한 마디 못하는 자매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 분은 입밖으로는 아니더라도 나의 엄마처럼 영으로 말씀하실 수는 있었다.

그러면서 지상에 있는 딸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전해주도록 내게 부탁하셨다.

두 분 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이어서 보는 나마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나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셨고 나는 깨어나자마자 자매에게 물었다.

“자매님, 아버지께서 혼수상태 속에 계신 적이 있어요?”

“어머, 네! 병원에서 혼수상태 속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머리를 틀어올리고 한복을 즐겨입으셨나요?”

“네!”  자매가 놀라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확인한 후 나는 천국에서 주님께서 만나게 하셨던 부모님에 대해 전해주었다.

자매는 너무 놀랍기도 하고 기쁨에 겨워 울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함께 얼싸안고 울었다.

나로서는 천국사역을 한 후 이처럼 보람을 느낀 적이 없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 일로 인해 주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다.

어느 누구도 그가 천국에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지 못한 자가 천국에 있음같이, 천국에 있을거라 생각한 그가 천국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는 천국갈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순전히 그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이신 주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천국에 이를 수 없는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고함에 빠지지 말고 주님 앞에 겸비해야 한다. 내 영혼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비단 나 자신조차 아니 어느 누구도 그 호흡이 끊어져 천국에 이르기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경계하고 계시는 것이라 믿는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변치 않는 믿음을 주시기를 쉬지말고 기도해야 한다.

나의 행한 바를 생각하며 방심하고 자만하면 안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만에 대해서 마태복음 7장에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은 적은 수의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령받고 은사받고 능력사역을 하는데다가 주님을 “주여”라고 부르는데 주님이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

 

얼마나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나 역시도 주님을 영접하고 은사를 받고 사역을 하는 사람이라 이전부터 이 말씀이 참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에 대한 해답을 21절에 주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주여 주여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늘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를  행하는 자녀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능력과 은사를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자들을 향해서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은사와 능력을 받고 내 멋대로 날뛰다가는 자칫하면 오히려 주님 앞에 죄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또 마태복은 25장에는 작은 일에 대한 상벌을 말씀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것을 준 자들은 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라며 그들더러 영벌에 들어가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25:31-46)

위의 말씀들만을 되새겨 보더라도 천국에 이르게 되면 정말 세 번 놀라겠구나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드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주님께서 부르시기까지 깨어 근신해야 함을 알게 해 주신 귀하고 복된 사건이었다.

주님께 영광을!

 

열 한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오후

 

도서관ㆍ사도 바울

 

마리아의 옥합에 관해 어떤 분과 대화중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인터넷 설교로 마리아의 옥합에 관한 설교를 들으며 눈물로 주님께 고백한 일이 떠올라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울먹이며 내가 말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크게 쓰임받고 싶지도 않아요.그저 이 썩을 몸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단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까지 다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말을 못한 채 한참을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 그간의 설움같은 것이 섞인 울음처럼 목 놓아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또 주님께서 기름을 쏟아부으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의자에 앉은 내 왼편에 서셨다.

나는 세상 모든 설움을 쏟아내듯 주님 품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지금 나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고스란히 주님께 쏟아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나를 안고 서서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너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듯...

 

내가 처녀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었다.

나에게 웃음 주시려는 듯 예수님께서 걷다가 나의 양팔을 마주 잡고 빙빙 돌리셨다.

나는 즐거움에 까르르 웃어댔다. 실제 지상의 내 육체도 그렇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바위에 걸터 앉으시고 내가 예수님 앞에서 아름다운 천국말로 찬양을 하며 양팔을 벌리고 빙빙 돌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예수님 작사 작곡인가보다.태어나서 첨 부르는 곡에 알아듣지 못할 천국말의 가사였다.

그처럼 춤추며 찬양하는 나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는 듯 느껴졌다.

춤과 찬양을 마치고 나를 예수님 무르팍에 머리를 얹혀 똑바로 눕히셨다. 예수님께서 나를 내려다 보시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기념하리라, 기념하리라, 기념하리라..”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뭐라고 말로 형용못할 겸손한 마음이 들면서 나는 예수님 쪽으로 몸을 돌려 얼굴을 묻었다.그리고는 황송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시려 하셨다.

이 크고 강하게 한 번 있은 후 오랜만에 크고 흰 건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다시 보여주신 것이 어찌 기쁘던지 나는 자꾸만 즐거운 웃음을 웃으며 한참동안 박수를 쳐댔다.

늘 그러하듯이 성전을 통해 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성전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들어가자마자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함께 찬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나도 함께 흥얼흥얼 따라 부르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오늘의 춤은 또 달랐다.

허리에 양손을 얹고 스페인식으로 투스탭같기도 한 스탭을 경쾌하게 밟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찬양과 춤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간만에 특별한 연못으로 가셨다.

평소처럼 예수님께서 연못에 가까운 바위에 앉으시고 나는 연못과 조금 떨어진 바위에 연못을 향해 앉았다.

평소와는 달리 나의 머리를 예수님께 기대어 누이셨다. 마치 환자가 간호하는 이에게 기대어 물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님은 연못의 물을 왼손으로 떠서 내게 마시우셨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시거라.”

예수님께서 내 등을 쓸어주시며 말없이 또 어루만져 주셨다.나는 기댄 채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예수님께 기댄 채 예수님께 간밤의 일을 물었다.

“주님, 간밤의 환상은 마지막 때의 모습인가요?”

간밤에 울며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있었다.이스라엘에 있는 황금색 지붕의 모슬렘 사원이었다. 그리로 아랍사람들처럼 보이는 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에 하얀 천을 쓰고 머리테를 두르고.

한 사람이 보이더니 두 사람 세 사람 점점 수가 많아지면서 휘어지는 골목같은 좁은 길로 가득 그런 사람들이 사원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그들이 그들의 예배를 하러 그 사원으로 다같이 올라가는 것이라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거든 마지막이 이른 줄 알라. 저들이 기승을 부리며 발악을 하고 있다.

저들의 세력을 확장하려고 힘쓰고 있다. 더욱 깨어 기도하라. 믿음을 지키라.”

“주님, 어떤 집사님에게 지옥이야기를 했더니 지옥갈까봐 두렵대요.”

예수님께서 웃으셨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들 중 내 허락없이는 아무도 지옥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름은(말함은-기록자 주) 세상에 살면서 내가 올 때까지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고 신음할 것을 우려하여 하는 말이다. 나는 내 자녀들이 마귀에게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다.”

 

“주님, 오늘은 주님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실 건가요?”

“내가 한 곳을 보여주리라. 가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면서 내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나를 이끄시어 다다른 곳은 도서관 실내였다.

굉장히 넓고 큰 도서관이었는데 책들이 놓인 선반 높이가 내 키의 다섯 배도 넘어보였다.

굉장히 많은 책들이 있었다.너무 큰 책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끝도 없는 듯 넓었다.

그 책들은 성경책과 주석들임을 알게 하셨다.

“성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번역과정에서 무리한 번역을 한 책들이 몇 권 있다.”

“어떤 번역이 잘 된 것인가요?” “English Standard Bible(잉글리쉬 스탠다드 바이블)이다.

King James Bible(킹 제임스 바이블)은 무리한 번역을 한 부분이 있느니라.”

사람들은 흔히들 King James Version(KJV)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께서는 Version(버전)이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Bible(바이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지금도 의아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가 한국인인데 이번에도 한글성경을 말씀하시기 전에 영어성경을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예전에 초반에 천국에 데려오실 때에도 영어로 데려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국 살아서인지…. 아무튼 이 부분도 때가 되면 알려주시리라 믿는다.

“한국어 번역은요?” “표준새번역이 현대인들에게 읽기 좋도록 번역이 잘 되었다.

그리고 개역개정도 무리없이 번역이 잘 되었느니라.”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 지역에서는 개역개정을 사용하는 교회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 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에 갔을 때에도 잠시 보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 읽어왔던 개역한글이 눈에 익었는지라 개역개정을 불편하여 안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잘된 번역이라고 하시는 것이다.그래서 이번에 성경인용을 개역개정을 기반으로 옮겼다.

나의 왼쪽으로 보이는 선반에 놓은 책들은 주석서임을 알게 하셨다.

“주석들도 나의 영감으로 쓴 책들이니라. 칼빈과 박윤선 주석이 영감있게 쓰여진 책들이다.”

내 안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의 이름들이다.

나는 매튜 헨리 주석을 즐겨 읽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데려오실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내 머릿속이 텅빈 듯 해지는 느낌이다.

가끔 세상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이 천국가게 되면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부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 주님 만나면 이것 좀 물어봐야지 하며 잊을새라 메모까지 하건만 막상 천국에 이르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천국에 오면 머리는 백지가 되어 오직 예수님만 보인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나의 전인격을 다루시어 하고픈 생각과 행동을 주시는대로 나는 다만 이끌려가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은 그런 곳이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들이 오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할렐루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주님, 성경을 읽을 때 주석을 같이 읽어야 하나요?”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진열되어 있는 책선반 사이로 거니시면서 말씀하셨다.

“성경을 읽으며 반드시 주석도 같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느니라. 주석을 같이 읽게 되면 더 깊이 있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을 읽어야 한다면 성경을 읽도록 해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내가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깨달음을 주리라. 특히 마지막 때이니 성경을 부지런히 읽도록 해라.”

 

“암송도 해야 되요?”

늘 성구암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으므로 확인받고 싶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두기만 하면 암송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력을 도와 꺼내어 기억나게 해 주리라.”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51-52

깨달음을 가지고 성경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합당하신 때에 기억나게 하시고 꺼내어 쓰도록 도우신다는 것이다.

 

성경이야기를 예수님과 나누고 있자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사도 바울이었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갑자기 보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주님, 사도 바울은 지금 뭐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도서관 멀찌기 오른쪽 끝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가 지금 영감으로 책을 쓰고 있는 중이다.한 번 불러볼까? 바울아~.” 사도 바울 아니랄까봐 천국서도 책만 쓰고 있다 싶으니 웃음이 났다. 천국에서는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책쓰기 좋아하는 사람은 책 쓰고, 찬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찬양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은 맘껏 뛰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나라!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천국인 것이다. 할렐루야!

 

바울이 내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온 몸에 겸손이 배인듯 보였다.

나는 속으로 베드로를 부른 것처럼 “바울 아저씨”라고 부르려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바울 선생님!”하고 부르면서 전에처럼 또 한 쪽 무릎을 꿇어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었다. 무릎꾾은 나를 일으키며 바울이 말했다.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다.”

이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의 장면에 나오는 말씀이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사도행전 10:25-26

궁금증 풍부한 내게 또 하나 의구심이 일었다.

‘그 당시 베드로와 동시대를 살던 바울이 어떻게 사도행전이라는 이 성구를 알고 인용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자마자 곧 지식이 임했다.

바울 뿐 아니라 모든 천국 백성이 이 땅에 성경을 천국에서도 읽고 연구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바울은 지금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나를 일으켜 둘이는 그 곁에 있는 큰 책상에 기역자로 앉았다.

예수님께서는 대각선으로 바라보이는 책상모서리에서 우리 둘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선생님은 성경을 열 세 권이나 쓰셨죠?” 바울이 침묵하고 답을 안 했다.

처음 천국에서 이 대화를 할 때에는 그저 속으로 ‘참 겸손한 분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더 깊은 깨달음을 주셨다. 내가 바울에게 던진 그 질문은 참으로 주님 앞에서 당돌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도서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분명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쓴 책”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바울에게 “성경을 열 세 권이나 쓰셨죠?”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가 쓴 디모데서신을 인용하여 예전처럼 답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나를 배려해서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앞에 서 계신 예수님 앞에 내가 민망할까봐 그는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이다.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영혼사랑이요 이웃사랑임을 그에게서 배웠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 사도 바울! 사랑이란 이웃의 수치와 부끄러움까지도 감싸안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우선순위 아래 내 이웃의 마음을 얼마나 자주 아프게 해온 것인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사람에게는 감사치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그것이 바로 아름답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주님께서는 나에게 이 교훈을 주시려고 그런 해프닝을 허락하신 것이다.   주님께 감사, 주님께 영광!

그리고 하나 더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왜 그 유명한 성경구절을 까먹고 망발을 했을까?

바울이라는 한 인간을 높인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오직 주님만을 높여야 하는데, 사람인 바울에게 절하며 그를 높이다가 그만 주님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조차 잊게 된 것이다.

사람을 높이게 되면 자칫 둘 다 망하기 쉽다.

어리석은 나로 인해 바울은 본인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위기에 처할 뻔 한 것이다.

사람을 높이다가 자칫하면 죄를 짓게 됨을 가르치신 주님의 경계였다.

영광과 경배에 관하여는 털끝만큼도 사람과 나누는 것을 허용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한다.오직 주님 한 분만이 홀로 영광받으실 분이신 것이다. 할렐루야!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인 바울 선생님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약간의 침묵 후에 그가 입을 떼었다.

“나는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내 믿음을 지적하고 훼방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나는 내가 믿는 믿음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만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모조리 잡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내 눈앞에 환상이 보였다.

로마의 한 거리였다.바울이 말을 타고 있었다.어느 집 문 앞에 한 그리스도인 여자가 서 있었다.바울이 그녀를 향해 채찍을 내리쳤다.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려 하자 곁에 있던 병정들이 그녀를 체포했다.내가 그 환상을 본 것을 알아차린 바울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 이웃사랑에 대한 교훈 한 가지가 더 임했다.

주님 앞에 돌아와 변화된 사람에게 아픈 과거를 스스로가 말하기 전에 묻는 것이 얼마나 고통을 주는 것인지..

물론 천국에서는 아픔도 상처도 없는 곳이지만 이전의 과거로 인하여 느끼는 것은 이 땅에서와 동일하나보다.

그래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빛된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진다.

상대가 부끄러워 할 일을 내가 나서서 일깨워주는 것은 나의 사랑없는 무례한 행동인 것이다.

 

사랑은..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내가 은혜받겠다는 목적하에 상대를 얼마나 많이 힘들게 했었던가.

그가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묻는 무례함을 범치 않기를 소원한다.

 

바울이 부끄러움 가운데 더욱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내가 다메섹으로까지 그들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내 눈앞으로 강한 빛이 쏘여왔다.”

속으로 ‘나도 빛되신 예수님 봤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이 내 속을 다 알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의 빛이 아니라, 너무 강렬해서 눈이 타는 듯하면서 내 폐부까지 찌르는 빛이었다.

나는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 순간 그 빛이 신의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내 눈앞에 영화같은 장면들이 나타났다. 다메섹 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무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면, 그리고 빛이 그에게 쏘이면서 그가 눈을 싸안고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 주변 사람들이 뒹구는 그를 보며 놀라는 장면들이 보였다.

바울의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에게 물었다.  ‘누구시나이까?’ 그 때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내가 네게 큰 일을 행하리라. 일어나 가라.’”

바울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께서 우리 둘을 향해 말씀하셨다. “바울과 너에게는 열정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나를 향한 열정이 될 때 그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나는 그것을 기뻐하노라.

그래서 내가 너희 열정을 보고 너희를 택했으며 너희를 사용하노라.”

그러시면서 둘의 머리에 손을 각각 얹어 축복의 안수를 해주셨다.

바울과 나는 겸손한 마음이 되어 머리를 숙여 안수를 받고 감사를 드렸다.

 

그 열정이 나를 향한 열정이 될 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미가 무언지 알 만하다.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이 오직 주님께로만 향해야지, 어떤 사람을 향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 내에 이처럼 사람을 높이는 일이 만연하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이 일을 통해 엄중히 경계하시는 것이다.

오직 주님만 높여야 한다.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직 주님만이 영광받으실 분이신 것이다.

 

바울은 쓰던 책을 계속 쓰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서 갑자기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면서 주님 음성이 들려왔다.

“휴거 직후의 장면이니라.”

고속도로 위의 차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망가져 딩굴어진 차들도 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한 골목이 보였다.내가 아는 사람이 헐레벌떡 골목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와이셔츠 바람에 몹시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말로 할 수 없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저 환경에서 건져주시겠다는 의미였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명하실 때에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실 일을 이미 예비해두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그리고 나서 나를 데리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내 머리에 안수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게 평안이 임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안수한 손을 거두지 않으신 채 손을 내미신 모습으로 점점 멀리 사라지셨고 나는 사라지시는 예수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사라지시면서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스르르 내 눈이 떠졌다.

 

 

열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밤

 

천주교의 오류 Ⅰ

 

낮에 천국에 데려가셨던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것이 많으신지 밤에 또 데려가셨다.

이번에는 천국을 거치지 않고 곧장 지옥으로 데려가셨다. 지옥에 도착하자 밑도 끝도 없이 구약의 한 왕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가 지옥에 있냐고 내가 묻는 것이었다.

기실 내 마음으로는 그가 천국있든 지옥에 있든 별관심 두지 않았건만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생각해보아라. 부자가 왜 지옥에 있었느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이다.

그(왕)는 내가 준 지혜과 물질로 우상의 제단을 쌓고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분이 아니시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2:8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는 일에 관해 확실하게 심어주시기 위한 주님의 배려였다.

도서관 해프닝에 이어 지금 또 구약의 왕을 통해 한 번 주지시키고 계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아니,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늘 두 번씩이나 데려오시면서 반복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그리고는 곧 지옥에 있는 그 왕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셨다. 그는 여전히 왕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 말도 못하게 낡아서 누더기처럼 되어 있는 더러운 옷이었다. 그 옷을 입고 구부린 채로 무언가를 등에 지고 나르고 있었다. 그 등에 진 것을 어디론가 퍼 나르는데 그 짐을 부린 곳을 보니 보석을 만드는 광석이 태산처럼 쌓여져 있었다.

그 광석들을 이리로 다 나르고 또 다 옮기고 나면 다시 반대편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그 왕이 지녔던 보석을 만드는 광석이 그에게 지금 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잠시 쉬는 시간 같은 때인지 그가 의자에 앉았다.

왕의 보좌를 나타내는 모양의 의자였는데 썩은 나무로 만든 듯 형상만 그럴 듯 해 보이는의자였다.

그가 그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은 팔걸이에 올려져 자동으로 쇠착고로 묶여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눈은 해골의 눈처럼 쾡해져 있었다.  두 눈이 쪼아먹혀서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지 않고 헛된 일에 쓸 때, 우상을 섬긴다든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쓸 때 이처럼 크나큰 이중적 형벌을 받게 됨을 보며 나는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신 후 나를 다시 천국으로 이끄셨다.

상급집에 도착해서 집앞 풀밭에서 예수님과 잠시 뛰고 쫓고 장난치며 놀다가 다시 예수님께서 크고 흰 건물로 데려가셨다.

큰 성전에 들어선 내 복장이 세상에나… 왕비복이었다!  옷도 좀 더 멋진 옷이었고 왕관도 미스코리아 왕관같은 거였다.

그리고 서 있는 모습도 이전의 보좌를 향해서 서 있던 모습이 아니라 만조백관들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을 그런 모습으로 자세히 보게 된 것은 천국에 데려가신 이후 처음이었다. 이제야 저에게 그들에 관해 물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주님, 전 저분들이 항상 궁금했어요.

뭐하는 분들이에요?” “이십 사 장로들이다. 저들은 찬양하고 예배하며 주를 높이는 자들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하며 섬기기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들 외에도 나를 자원하여 섬기기 원하는 자들이 그 자리에 참여해 있다.”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채 말씀하셨습니다.

마주해 있는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과연 이십 사 장로들이 이전에 아브라함이 탔던 황금휠체어같은 황금보좌를 타고 앉은 채 나를 보고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황금보좌는 바퀴가 있지만 움직일 때에는 스르릉하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12명이 두 줄로 나란히 서기도 하다가 24명이 한 줄로 나란히 서기도 했다.

그들은 아름답고 밝고 멋진 옷과 화려한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옷과 면류관의 빛깔과 크기는 이십 사 장로들보다 조금 덜 밝고 작았다. 그러나 그들 또한 그 모습 그대로 너무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천국은 욕심없는 곳,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자족하고 만족해하며 행복해 하는 곳이다.

 

나는 소리높여 찬양하기 시작했다.

 

♬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양하겠네  온 땅이여 주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나는 저음이고 찬양에 자신이 없는데 천국에서는 어쩌면 그리도 아름답고 높게 잘 부르는지.

이 또한 성령님께서 나를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내 찬양이 끝나자 그에 화답하는 이십 사 장로팀의 화답송이 있었다.

 

♬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리고 나서 성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다.

빛의 형상으로 보좌에 앉으시는 그 분을 뵈옵는 순간 그 큰 성전 전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외심과 겸비함이 충만하게 넘쳤다.

하나님의 음성이 성전 가득 우렁우렁 울려퍼졌다.

“너의 충성됨을 내가 보았노라, 너의 충성됨을 내가 인정하노라.”

나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스스로 나 자신이 충성되다고 도무지 생각되어지지 않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의아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내 속 생각은 그러하건만 내 입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왕비복을 이쁘고 차려입고 곧게 선 상태에서 두 무릎만 구부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곱게 숙이고 두 눈을 내려깔고는 두 손은 양옆에 가지런히 내려뜨린 채 이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나이다.”

아니 아니...평소의 나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나였다!

순전히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나타내시는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자태였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시각과 사람의 시각이 참 많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기를 소망한다.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개의치 않고 오직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날개달린 천사들이 날면서 찬양하기 시작했다.

 

♬ 온 세상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우렁우렁거리며 들렸다.

“저것을 책의 제목으로 삼으라.”『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이 책의 제목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가리라! 구름타고 가리라!”

그리고는 나에게 명하셨다.“너는 나의 살아있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라!”

나는 다시금 큰 경외심으로 무릎과 고개를 숙이며 아멘으로 화답드렸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고 있었다.“주님, 마귀가 나를 괴롭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꾸짖듯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준 믿음의 명패를 잊었느냐? 그것을 사용할지어다.”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저절로 지극히 작은 자의 겸손한 마음이 되어 다시 “아멘..”으로 답했다.

내게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마치 한 달란트를 받아서 쓰지 않고 땅에 묻은 좋에게 하시는 책망처럼 들렸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사용치 않고 묻어두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심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마귀에게 눌리지 말고 자유하게 살라고 선물을 주셨는데 쓰지 않고 신음하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셔서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뵌 후 예수님과 나는 그곳을 나와서 손을 잡고 황금길을 거닐었다.

나는 여전히 왕비복을 입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호려한 면류관과 빛나는 옷을 입고 계셨다.

예수님의 그 옷을 이제부터 왕복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예수님은 왕복을 입고 나는 왕비복을 입고..너무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니는 왕과 왕비..   어디 비단 나 뿐이겠는가.

모든 예수님의 신부들이 나처럼 왕비가 되어 천국에서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닐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당분간 너를 보지 못하리라..” 헉...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 말씀이 나를 더 이상 천국으로 데려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물론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말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하지만 겪어내야 하는 일이리라. 예수님께서 지금 계획 가운데 나를 만나고 계신 것이므로.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달래며 물었다.  “얼마 동안이요?”

예수님께서 짖궂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며 짧게 대꾸하셨다.  “하루만!”

크...예수님께서 나에게 거신 조크였다!ㅎㅎㅎ

오늘 기도모임이 있는 이 하루 동안 나를 천국으로 데려오시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며 걸은 장난이었다.너무 우스워서 막 웃었더니 예수님도 함께 막 웃으셨다.

왜 그런 장난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아까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꾸중들은 것으로 시무룩해져 있음을 아시고 나를 달래주시려는 예수님의 자상하신 배려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그 조크 한 마디로 나의 주눅들었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신 것이었다.

내가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이런 일들이 지난 내 삶 속에 얼마나 많았던 것일까 싶은 것이 콧등이 시큰해온다.

힘겹고 주눅들고 시무룩할 때 마다 안타까와 하시며 나를 즐겁게 하려 애써오셨을 예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여전히 예수님과 손을 잡고 양옆에 꽃들이 즐비하게 있는 황금길을 천천히 거닐었다.

“예수님, 저랑 대화하는 게 좋으세요?” 갑자기 내가 예수님께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스러운 듯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청종하는데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도하며 사랑한다고 하고 내 음성 듣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응답이라는 이름으로 내 음성을 들려주려고 한다. 근데 막상 사랑한다고 기도하고는 정작 내 음성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려 하질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되돌아가 버린다. 그런데 너는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청종하잖니. 내가 너에게 자꾸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니?”

주님의 이 말씀은 나를 칭찬하기 위함 보다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주님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임을 읽는 분들은 아시리라 믿는다. 기도한 이후 나타내는 우리들의 태도를 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움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시고 응답해 주시길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소연처럼 털어놓고는 주님의 답변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며 더욱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대화하실 것이다.

 

내 마음에 감사함이 차오르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안수하셨다.

“네가 나를 청종하므로 내가 너를 높이 세우리라.” 그러시고는 나를 일으키시고 곁에 있는 꽃을 하나 드시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새 예수님 손에는 꽃 화환이 들려 있었다.

그 화환을 마주 선 내게 씌워 주시고는 나를 꼭 안으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나의 왕비여...”

 

마주 서서 안고 있는 우리 머리 위로 갑자기 어디선가 새들이 나타났다.

연한 하늘색과 흰 빛을 띈 새들의 무리가 일렬로 둥근 원을 그리며 돌면서 지지배배하고 지저귀는 것이었다.그 지지배배가 “찬양하라”라는 의미의 천국말로 들려왔다. 새들이 천국말로 짹짹거리며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머리 위로 돌던 그 새들이 막 빨리 도니깐 하나의 원이 되어 화염검과 같은 빛이 났는데 그것을 영적으로 “영광”이라 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뿐 아니라 옆에 있던 강가의 물고기들조차 팔짝거리며 물위로 튀어오르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마치 예수님과 내가 남녀 주인공이 되어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답고 놀랍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예수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계속 걸으셨다.

그 길 끝에 있는, 이전에 엄마 집을 보던 낮은 언덕으로 올라와 예수님과 내가 앉았다.

아래로 빛이 희미한 엄마집이 있는 지역이 보였다.

“주님, 엄마는 주님이 허락지 않으셔서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허락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겸비하여져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입을 가리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엄마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엄마를 다시 보고싶었다. 그 말이 떨어지고 곧 엄마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엄마를 다시 또 보았음에도, 그리고 간만에 만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재회의 감격같은 것은 없었다. 정말 신기한 노릇이었다.

엄마를 지극히 사랑하는 나였음을 주님이 잘 아시는데 내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의 태도인 것이다.

이산가족이 만났듯 울며불며 얼싸안고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아도 부족할 판인데 말이다.

그저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운 호감의 마음 정도였다.

 

“엄마, 말씀 좀 해보세요.”

 

엄마는 나를 미소로 바라보시면서도 말씀을 하지 않으 채 가만히 내 손을 잡으셨다.

그 순간 엄마가 하려는 말이 나에게 전달되어졌다.

“얘야, 내가 너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단다.네가 와서 난 기쁘다...”

사람 생각으로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들으면 감격에 젖어 서로 얼싸안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분명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였다. 그것은 결코 내가 떠올린 생각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모든 일을 계획 가운데 엄마를 만나게 하셨고 그 다음 마리아를 만나게 하시려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가 믿는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무대에서 주께서 허락하신 만남과 대화를 하고 또 주님 뜻 가운데 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내 뜻과 내 감정과 내 바람대로 고집을 부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님의 계획과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가령 내가 지금 상황에서 엄마랑 더 있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가지 않으려 한다면 아마 더 이상의 천국기행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곧장 지상으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나를 온전히 붙들고 계시므로 이 모든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마리아는 어디 있나요?”

내 마음으로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대로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는데 실제 입으로는 「마리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리아가 성모가 아닌 그냥 인간 마리아일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경배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저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느니라.” 나는 그리로 이동되어졌다.

이동이라는 표현 그대로 어느 새인가 학교건물 같은 곳 앞으로 와 있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그 다음 세트를 찍기 위해 다음 세트장으로 완전 옮겨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얗고 네모난 단층 건물은 몇 칸으로 나뉘어져 숱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문 앞에 몇몇 여자들이 서 있었다. 제일 왼 쪽에 어린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를 바라본 순간 그녀가 마리아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상하고 해사한 얼굴, 갸름하고 어여쁜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오른 손을 들어 그녀를 향해 “할렐루야!” 하고 외쳤다.

그녀도 나를 미소로 바라보며 아기를 안은 채 “할렐루야!”하고 답하고는, 예수님 앞에 두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경의를 표했다.

예수님께서 일러주셨다.

“저가 낙태아들을 돌보고 있느니라. 세상에서 함께 지내던 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문 왼쪽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마리아, 문 오른 쪽으로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녀들 중 한 명이 요안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알려 주시지 않아 모르겠다.

그 두 명도 아기들을 안은 채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어 주었다.

 

요안나(Joanna) 뜻: 하나님의 은사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눅8:3).

그는 물질로 주님을 도왔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는 그 시체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중의 하나였다(눅 24:10)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인명사전)

 

주님께서 다른 한 명을 알려주시지 않은 이유는 그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아 알려주어도 내가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식을 주셨다. 더더욱 희한한 것은, 두 명 가운데 요안나의 모습만 선명하게 기억나고 한 명은 희미하게만 느껴지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내게 필요한 지식만은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요안나의 모습은 조금 퉁퉁해 보이고 볼살이 좀 있어 보였다. 세모난 얼굴형에 키도 적은 키로 볼 수 없는 체구였다.

 

내가 마리아에게 물었다.

“마리아님, 천주교에서 당신께 ‘마리아여 빌으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로서는 도무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이었다. 상당히 심오한 질문을 하게끔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이다.

마리아의 입으로부터 거기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고자 질문을 던지게 하신 것이다.

그녀는 좀 난처한 표정, 다시 말해 예수님께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그래서 늘 나의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다.  저들이 잘못 알고 있으나 천국에 오게 되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천국에 오게 되면”

 

이 말은 모든 천주교인들이 천국에 오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성령께서 일러주셨다.

천주교인들 가운데 주님께 속한 자들만이 천국에 오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마리아를 만나기 전에 지옥에서 구약의 한 왕을 보게 하시고 엄마를 만나게 하신 이유를 이제 알게 하셨다.

구약의 한 왕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우상을 겸하여 섬기다가 지옥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리아라는 사람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처럼 사람을 겸하여 섬기게 되면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게 됨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엄마가 내게 하셨던 말 “너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단다.”

이 말은 천국에 있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모두 세상에 남아있는 믿음의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묶어주실 때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고 살다가 천국에 이르서서 확연히 깨닫게 되면서부터 저절로 자발적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마리아 뿐이 아니므로 마리아를 지목하여 “마리아여 빌으소서” 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국에 있는 엄마에게 나는 한 번도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엄마는 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고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나를 주님께로 이끄신 것이다.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기도부탁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십 사 장로들에게 오히려 기도부탁을 하셨었다.

그렇다면 천주교에서도 마리아에게 뿐 아니라 이십 사 장로들에게도 이런저런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예수님께서 그녀를 위로하듯 그 머리에 안수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볼 때마다 안수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친으로서 당했던 고난에 대한 주님의 위로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본인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당하는 난처함에 대한 위로인 것이다.

안수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가 예수님의 다른 손을 내 머리에 얹으며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말하는 것이었다.

“저도 축복해주세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흐뭇한 표정으로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셨다.

“너의 욕심이 나를 기쁘게 한다. 갑절의 축복을 받을지어다.”

그 순간 축복의 안수를 받고 있던 내게 큰 기쁨이 넘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안수하시는 것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격이 현격히 다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성모라는 호칭은 천국 어디에도 없으며 결코 그렇게 불러서도 안 됨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뿐 아니라 나와 마리아가 함께 같은 레벨로 안수를 받도록 하셨다. 결국 마리아는 성모가 아닌, 추앙의 대상이 아닌, 나와 동급의 성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과 아기를 예로 들어보자.

시험관 아기란 여러가지 이유로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운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시험관내에서 수정시켜 아기를 얻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틀 후 2-8 세포기의 배아가 되면, 혹은 포배기 배아가 될 때까지 기다려 그 배아를 가는 관을 통해 자궁 안으로 주입하게 된다. 시험관에서 만들어진 성숙한 배아가 원래의 난자의 주인인 엄마의 자궁에서 남은 기간 자라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배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래서 그 아기가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자.그럴지라도 그 시험관을 엄마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상에서 그 태에 모셔서 세상에 내어놓은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 두 살의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원래의 아버지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누가복음 2:49

 

천주교 내에 있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남을 주선하고 계획가운데 이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때였다. 나와 대화를 하고 있던 마리아 뒤편으로 테레사 수녀가 보였다.

세상에서 본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무지 많았었다고 기억된다.

그런데 천국에서 본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없는 화사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녀가 어린아이를 걸음마시키듯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가 몸을 일으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세상에서는 잘못 알고 마리아에게 도고를 부탁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천국에 와서 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막달라 마리아!그 여인이 갑자기 보고싶어지는 것이었다.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는 어디 있나요?”

예수님께서 왼편 건물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굶어죽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단다.”

천국에서는 성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예수님께서는 여자라고 해서 “그녀”라고 부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자던 여자던 우리 모두는 성 구분이 없는 예수님의 신부일 뿐이다.

왼편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우리 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그 순간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약간 통통한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녀 곁에 무수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대부분이 소말리아 같은 빈민국가에서 굶어죽은 아이들이며 또한 북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그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넘쳐났다.

세상의 악한 어른들로 인해 고통당한 어린 영혼들을 주님께서 이처럼 거두어 주시는 것이다. 고마우신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궁금증이 피어났다.

“주님, 이 아이들은 언제까지 이곳에서 양육을 받게 되나요? 천국에서도 아이들이 세상에서처럼 성장하나요?”

마리아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아이들은 예수님 나이인 33세까지 이 곳에서 성장하게 된단다. 그리고는 각자의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지.”

그때 왜 이런 생각을 주셨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맹의순 선생이 떠올랐다. 환상으로 본 그의 짧은 스포츠 머리가 기억나면서 한 가지 더 물었다. “천국에서 머리 손질은 어떻게 해요? 이발소가 있나요?”

예수님을 위시한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질문을 한 저를 많이 사랑스러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매사에 서툴고 호기심많은 외국인을 대하는 듯한 호감으로 절 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또한 저를 사랑스럽다는 듯 보시며 말씀해 주셨다.

“천국에도 이발소가 있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막 죽어서 천국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당황함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 둔 것일 뿐이다.

천국에 오게 되면 머리 깎을 필요도 없고 미용실에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천국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당황할 이들을 위해 준비해두신 주님의 자상하신 배려라는 것이다.

 

건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하얗고 큰 교건물 같은 내부에 올망졸망 앉은 이쁜 어린이들 앞에 베드로가 서서 양손으로 유머러스한 제스처를 써가며 설교같은 것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 듣는 아이들은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바라보는 나에게도 한없이 뿌듯한 행복감이 넘쳐나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좋은 천국이다!

잠시 후 깨어난 나는 아직도 그 감격과 아름다움에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것이다.

천국은 아름답고 고상한 곳이다.

그저 한 단어로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그런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영원히 맘껏 누리고 살 것을 상상해 보라!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66:22

 

 

열 두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3일 밤

 

천주교의 오류 Ⅱ

 

주님께서 천주교 안에 있는 많은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사건이 오늘 생겼다.

참으로 치밀하시고도 섬세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오늘 행하시어 나로 하여금 이 제목에 걸맞는 설명을 부연토록 하셨다.

나는 다만 도구로서 그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나의 주장을 넣은 것이 없고 오직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셔서 보여주신대로 기록할 따름이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

 

2007년 9월 14일 오전 6시 30분경

 

오늘 새벽 컴퓨터를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불편한듯 느껴지면서 기도해야 된다는 절박감을 주셨다.

그러더니 입에서 저절로 기도가 강하게 나오면서 온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이전에 천국을 데려가실 때와 같은 증상임을 알게 됨과 동시에 주님께서 나를 천국에 데려가셨다.

 

천국 입구에 들어선 저의 모습은 4,5세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예수님께서 세마포를 입으신 모습으로 나를 반기셨다.

예수님의 왼 손으로 내 오른 손을 잡고 두어 발자욱 걸으시다가 나를 예수님의 왼팔에 안아 올리신 채로 오랜 만에 보는 하얗고 큰 건물 안의 성전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셨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있던 큰 방으로 데려가시어 드레스와 왕관을 입히셨다.

성전 보좌가 있는 쪽 가까이에 나는 무릎꿇었고 예수님은 서신 모습으로 오른 손으로 축복하시듯 가만히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셔서 안수하셨다.

“예수님, 오늘 무엇을 알려주시려고 저를 이렇게 또 데려오셨나요?”

예수님께서 저의 어깨를 감싸안고 걸으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부터 천주교의 오류에 대하여 써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내가 말한대로 너에게 감동을 주어 알려주기 위하여 널 데려온 것이니라.” “예수님, 마더 테레사에 관한 기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직접 물어보려므나. 가서 보도록 하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 둘이는 어느새 이전에 제가 보았던 학교 건물앞에 서 있었다,

마치 그 건물을 향해 축지법처럼 확! 달려든 것처럼 가게 된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등을 돌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우리를 향해 등을 돌렸다.

테레사 수녀와 내가 마주보고 서 있고 예수님은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영어로 “Praise the Lord"(프레이즈 더 로드: 주님을 찬양하라)라고 했고,

테레사 수녀도 역시나 미소띈 얼굴로 “Praise the Lord”라고 화답했다.

여전히 얼굴에는 주름이 없는 환한 얼굴이었는데 분홍빛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면류관이 아닌 세상에서 쓰던 대로 수녀모자같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천국에서는 각자 자기 편한대로 살기 때문에 베드로가 귀찮아서 면류관을 안 쓰고 다니듯이 테레사 수녀도 자신이 세상에서 쓰던 수녀복을 즐겨 입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복을 즐겨입던 저의 엄마도 늘 한복차림이었다.

 

“신의 부재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말해주시겠어요?”

“나는 알다시피 숱한 봉사를 해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영혼의 공허를 늘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이런 봉사만으로는 천국에 이르지도, 주님을 만날 수도 없다는 위기감을 자주 느껴왔단다.

그런 부분에 대해 내가 글로 썼던 것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에 맞추어 이런저런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이제 내가 천국에 와서 알게 된 것은 나의 그 공허가 왜 생겨났는지이다.

내가 기도를 할 때 한 편으로는 마리아에게 구하고, 한 편으로는 예수님께 기도드렸지.

마리아에게 구할 때에 느껴지는 성령님의 안타까운 심령,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져야 할 자리에 마리아를 두는 데에서 오는 공허감이었음을 알게 되었단다. 그러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그 중심을 받아주시고 인정해주시어 그 은혜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란다.”

 

내가 고개를 왼 쪽으로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수님, 이 시점에서 마리아도 한 마디 말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속으로 “말씀”이라고 하려 하는데 입에서는 “말”이라고 표현되어졌다.

이 역시도 마리아에게 “말씀”이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내 입술을 주장하신 것이었다.

 

마리아는 건물 안에서 여전히 낙태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기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데 계속해서 지상에서 올라오는 아기들을 속속 안아서 차례차례 눕히느라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 곁에 여자들이 함께 돌보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의 이름이 안나와 수산나임이 절로 알아졌다.

마리아 곁의 안나는 마리아의 모친 안나임을 일러 주셨다.

 

안나(Anna) :은혜

[1] 아셀지파 바누엘의 달인데 결혼 7년후에 남편이 죽고 즉시 성전에 들어가서 84년간 봉사하고 있는 중에 아기 예수를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2:36-38). 신약 성경에서 가장 오래 장수 하였다.

[2]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모친 안나는 전설에 의하면 베들레헴 사람이며 제사장 마단의 딸이다. 형제를 두었는데 하나는 엘리사벳의 어머니 세례 요한의 할머니다. 희랍교회에서는 4세기경 부터 안나 숭배가 시작되었다.

 

수산나(Susanna) :백합화

예수를 신종하는 여자로서 소유로 주를 봉사하였다(8:3). (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인명사전)

 

내 마음에 그녀들의 마음이 전달되어져 왔다.

그들은 올라오는 그 아기들을 향해 가슴 깊이 눈물을 흘리는 듯 아파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마리아가 돌아서서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얼마 전에 제가 성당에 다니는 한 자매와 변론하는 것을 보셨지요?

그때 그녀가 제게 말하기를 마리아가 부활 승천했다고 하던데 거기에 대해 좀 이야기해 주세요.

”이전에 보였던 것처럼 마리아는 다시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세상에서 육체가 죽었고 내 영혼이 부활하여 승천한 것이 맞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섬기던 베드로나 바울이나 모든 이들이 동일하게 겪은 것이지 나에게만 특별하게 지칭되어질 일은 아니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금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다가 죽는 자들이 동일하게 체험할 일이란다.

그 육체는 죽고 그 영혼이 예수님처럼 부활하고 승천하여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

“그럼 천주교에서는 왜 유독 마리아에게만 부활승천설을 말하며 신격화하는 건가요?”

“그것이 바로 사단의 계략이란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이후 세울 일에 대해 전략적으로 하나의 우상을 세울 필요를 느꼈지.

그 일을 위해 사람을 신격화하는 일에 나를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대신 사람을 섬기도록 미리 세뇌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나는 그 누구보다 천주교를 신봉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있단다.”

 

그 때 고개를 돌려 예수님을 향해 내가 물었다.

“주님, 얼마 전 교황이 했던 발언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왜 그런 말을 한 건가요?”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가톨릭 교회만 참된 교회라고 한 발언에 대해 드린 질문이었다.

이 부분에 관해 예수님께서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세계정부를 세우기 위한 사탄의 전략 중 하나이다.

천주교는 이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앞두고 그를 비호하고 돕기 위해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도 적그리스도를 섬기도록 하기 위한 우상의 사전 연습으로 두었던 것이며, 이제 세계정부를 세우는 데에 힘을 모으기 위해 로마 가톨릭만이 교회라는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발 아래 털썩 주저앉아 간구했다.

 

“주님…천주교에 속한 영혼들을 구원해주소서…!”

 

예수님께서 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게 속한 영혼은 단 한 영혼도 잃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너는 부지런히 이 책을 그들에게 전하여라.

내가 이 글을 읽는 나의 백성들의 마음을 주장하여 그들을 건져낼 것이니라.”

 

이제 내려가야 함을 느꼈다. 나는 예수님과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을 막 더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되질 않았다. 나는 다시 지상의 육체로 돌아와 있었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예수님께서는 천주교의 오류에 대해 말씀하시고자 잠시간 나를 데려가셨던 것이다.

주님의 단호한 이 결단은 나로서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지는 일이다.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글인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는 단 한 마디의 격려성 말씀조차 없이 천주교의 오류에 대해 두 편에 걸쳐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분노할 천주교인들에게 혹독히 당할 것이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주님은 내 걱정을 전혀 안 하시네?’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 주신 깨달음이 있었다. 현재의 나는 죽으면 천국이 예비되어 있는 자이다.

그런데 현재 천주교 내에 있는 영혼들 가운데 “마리아여 빌으소서, 성모님~”하고 있다가 죽으면 지옥간다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잃은 양에게 있는 것이다.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을 알게 하셨다.

그 주님 마음을 알고 나니 죽음도 핍박도 두렵지가 않다.

나는 단지 그 일을 위해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리」로 쓰임받은 것 뿐이다.

부디 주님 음성을 듣고 돌이켜 천국에 이르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린다.

 

 

열 세 번째 데려가심/ 2007년 2월 15일

 

사도 요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가 끝나면서 예전처럼 기름부음이 마냥 쏟아졌고 내 머리가 휘융~ 도는 듯 사로잡히더니 금새 천국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는데 그 가운데 사도 요한과의 만남에 관하여만 쓰도록 하셨으므로 순종했다.

예수님께서 기진맥진한 나를 누이신 곳은 상급집의 풀밭이었다.

나를 부축하셔서 곁에 있는 시내에서 물을 떠서 마시우고 얼굴에도 적셔주셨다.

“단 물을 마셔라.” 그 물을 마시고 그 물이 얼굴에 적셔지니 신기하게도 기운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힘겨웠다.

내가 지쳐있게 된 것은 주님께서 지옥으로 데려가셔서 이단의 괴수였던 어떤 사람에 관하여 몹시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지옥의 장면과는 달리 그 장면을 볼 때 퍽이나 몸과 마음이 힘이 들었다.

평소에는 천국에 오면 회복이 금새 되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을 정도로 힘겨운 것이다.

왜 이처럼 힘이 들었는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려주시지 않아서 모르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를 부축하셔서 집안으로 들이셨다.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소파에 나를 앉히시고 포도 한 알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나는 그것을 받아 먹었는데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이 너무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그런 바람을 아시고 다시 나를 부축하여 침대에 데려다가 누이셨다.